매일신문

스포츠클라이밍-산이 아니면 어떠랴, 나는 오르고 싶다

도심 한복판에서 산을 탄다. 평범한 산이 아니다. 높이 8m의 인공암벽. 만만하게 보이는 높이다. 자신있게 바위에 붙어본다. 3m 높이까지는 기세가 좋다. 6m 정도를 오르자 '파르르' 근육이 떨린다. 팔·다리의 근육이 팽팽해지고 곧 쥐가 날 모양. "텐션(Tension : 매달림)"을 외치고 잠시 쉰다. 다시 도전해보지만 남은 2m는 역부족. 어렵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힘이 쫙 빠지며 손끝이 스르르 풀린다. "손을 놓아도 안전하다"는 외침도 들리지 않는다. 혼미해지는 정신. 겨우 손을 놓고 줄 하나에 의지해 천천히 떨어져 내린다. 겨우 6m를 올랐을 뿐인데 땀으로 흠뻑 젖었다.

대구 앞산에 자리잡은 대구직할시청소년수련원 인공암장. 평소에 믿을 건 나 자신뿐이라던 사람들도 바위 앞에 서면 가장 못 믿을 것이 자기자신이다. 딛고 선 발도, 손끝의 홀드도, 모든 것이 불안할 뿐. 도무지 자신의 능력을 믿을 수가 없다.

그래도 실내암벽장엔 밤늦은 시간까지 땀을 빼는 클라이머 동호인들로 붐빈다. 다양한 난이도의 벽에 매달려 정신을 집중하다보면 복잡한 일상생활은 물론 스트레스마저 땀에 씻겨나간다. 자연암벽 등반을 위한 훈련용이었던 인공암벽이 이젠 전천후 레포츠로 자리잡았다.

지난 2일 오후 6시, 대구 성서지역에 자리잡은 실내암벽장인 '대구클라이밍센타 성서점'에는 직장인들과 학생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퇴근하자마자 곧바로 달려왔다는 박정만(52·대구시 북구 읍내동)씨는 "홀더에 몸을 의지해 매달려 있다보면 몸이 유연해지고 근심 걱정마저 모두 날아간다"고 말했다. 특히 5개월전 84㎏이던 몸무게가 78㎏으로 줄어든 것도 스포츠클라이밍 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뱃살이 빠지는 건 기본이고 모든 일에 자신감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됐다"고 자랑했다.

김상태(35) 씨도 "난이도에 따라 극복해나가는 재미가 특별나다"며 "무기력하고 용기없는 사람에게 특히 권하고 싶은 운동"이라고 말했다. 매주 화·목요일 저녁에 청소년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스포츠클라이밍을 가르치는 앞산 대구청소년수련원에도 요즘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이곳의 장점은 높이 8m의 인공암벽으로 자연암벽타기의 오묘한 맛과 모험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2인1조로 한 명이 암벽을 오를 때 다른 한 명은 오르는 사람의 몸에 묶은 밧줄을 아래서 잡고 안전을 확보해줘야 한다. 이때 등반자(암벽을 오르는 사람)와 확보자(아래에서 줄을 잡아 안전을 맡은 사람) 사이의 무언의 믿음이 바탕이 되는 것은 당연지사. 때문에 스포츠클라이밍은 가족운동으로 안성맞춤이다. 남편은 아내를 믿고, 아들은 아빠를 믿어야 하기 때문에 가족 간의 정이 새록새록 깊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여성들이 클라이밍의 매력에 푹 빠져드는 것은 체중감량 효과 때문이다. 전신의 근육을 골고루 써 군살빼기에 그만이다. 대구클라이밍센타 수성점의 김영희 씨는 "극한의 도전과 스릴을 안전하게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스포츠클라이밍의 최대 장점"이라며 "실내암장의 경우도 회원 70% 정도는 산을 타는 사람이 아니라 운동삼아 찾는 일반인들"이라고 소개했다.

전국적으로 200여 곳이 넘는 실내 훈련용 클라이밍센터가 있다. 각 지자체별로도 인공 암벽장이 운영되고 있다. 국제 경기를 치를 수 있는 규모의 인공등반벽도 20여 곳. 하지만 아쉽게도 대구에는 아직 이런 인공벽이 없다. 클라이머들이 제일 아쉬워하는 것도 이 부분이다.

장비는 대개 암벽화(4만~7만 원)와 초크백(손의 땀을 흡수하는 가루를 담는 작은 가방)만 준비하면 된다. 강습료는 대개 월 5만 원선.

◇대구·경북에서 스포츠클라이밍을 배울 수 있는 곳=대구파워클라이밍센타(대구 수성4가 053-743-8850), 대구클라이밍센타 수성본점(053-754-7579), 대구클라이밍센타 성서점(582-3579), 대구직할시청소년수련원 인공암장(053-656-6655), 에로스 월(대구 대명5동 053-622-1514), 포항 김대우 암벽교실(054-262-3144), 경주 클라이밍스쿨(054-771-7922)

◇ "작년과 재작년 전국체전 산악등반부문에서 대구가 연거푸 1위를 했습니다. 그런데도 전국체전 대구대표 선발전은 포항에서 해야만 합니다. 대구에는 대회를 치러낼 만한 규모의 인공암벽장조차 없기 때문입니다."

정종달 대구산악연맹 경기이사는 오는 24일 포항에서 클라이밍 체전선발 예선전을 치른다며 시도마다 하나씩은 다 있는 인공암벽장이 왜 대구에만 없는지 의아해 했다. 특히 전국체전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포항, 문경, 안동 등지로 떠돌이 훈련을 할 수밖에 없다고 아쉬워했다.

전문가들은 현재 국제대회를 치를 수 있는 규모의 인공암벽장을 건설하는 데는 6억 원 정도의 예산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했다. 현재 서울의 경우엔 각 구청마다 국제대회를 치를 수 있는 규모의 인공암벽장 시설을 갖추고 있다.

산악인들은 클라이밍 동호인들이 급격히 늘어나는 것도 대구에 인공암벽장이 필요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박본현 파워클라이밍센타 대표는 "최근 인터넷을 통해 산행에 나서는 인구가 대폭 늘어나면서 전문적인 클라이밍 교육의 필요성이 더 커졌다"며 "대구에 인공암벽장이 하나 생기면 선수층뿐만 아니라 동호인들의 교육과 안전한 등반을 책임지는 구심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박운석기자 stoneax@imaeil.com

사진·정우용기자 sajahoo@imaeil.com

사진: 최근 실내암장에는 살빼기를 위한 여성이용자들이 부쩍 늘었다. 사진은 대구클라이밍센터 성서점의 실내암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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