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9월 세계무역센터협회(WTCA)로부터 초청장이 날아왔다. 총회를 하는데 나더러 기조연설을 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뜻밖의 초청을 받고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 하는 그들이 한국의 자치단체장에게 무엇을 듣고자 하는지 의아스러웠다.
그 배경을 알아보니 이랬다. 미국의 위용을 상징하듯 맨해튼 하늘높이 솟아 있던 세계무역센터가 9'11 테러로 한 순간에 사라진 후 그들 내부에서는 "그동안 경제만 생각해 왔는데, 이제 세계 평화에 기여할 방도를 모색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무엇보다 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이 급선무라는 인식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던 중 협회 부총재인 한국교포 이희돈 박사가 2003년 경주세계문화엑스포를 다녀갔다. 그는 경주엑스포가 역사문화의 재창조를 통해 평화 메시지를 전할 뿐만 아니라 현대적인 감각과 첨단 기술로 경제적 가치도 창출시키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세계무역센터협회가 지향하는 목표와 일치한다고 느꼈다고 한다.
초청의 취지에 공감했기 때문에 나는 당시 엑스포가 한창 진행중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뉴욕으로 날아가 '문화산업-세계를 여는 창'이라는 주제로 연설했다. 경주엑스포의 성공경험과 21세기는 문화가 인류 평화와 번영의 원동력이라는 소신을 이야기했더니 큰 박수가 쏟아졌다.
뉴욕을 다녀온 지 불과 7개월 만인 2004년 5월, 나는 보스턴행 비행기를 타야 했다. 시장개척과 투자유치가 주목적이었지만, 하버드대에서의 특강도 예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하버드대의 초청 이유도 세계무역센터협회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당시 하버드대에서는 동양의 정신과 문화를 연구하는 흐름이 거세게 일고 있었는데, 한국 그 중에서도 경북이 지금 현재 동양문화의 정수를 가장 잘 간직하고 있다고 생각되어 나를 부른 것이라 했다. 나중에 들으니 중국은 1960년대 문화혁명으로 유교이념이 상당부분 무너진 상태고, 일본은 특유의 사무라이 문화가 지배하는 국가로 그들은 인식하고 있었다.
그렇게 두 차례에 걸쳐 미국을 상징하는 공간에서 강연을 하며, 나는 경북이 한국 문화의 얼굴임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그동안 줄곧 '문화 도지사'로 자처하며 해 온 일들이 헛되지 않은 것 같아 보람도 컸다. 오랜 세월 잠들어 있던 고택에 생명을 불어넣은 '유교문화권개발사업'과 한국학의 메카로 자리잡은 '국학진흥원'을 통해 한국의 정체성을 확립해 왔음을 그들이 평가해 준 것 아니겠는가. 1999년 4월 하회마을에 온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관례를 깨고 신발을 벗고 충효당에 올랐듯이, 전 세계인들이 경북으로 와서 퇴계'서애와 대화하며 한국의 문화와 정신을 체득하길 희망한다.
이의근 경북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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