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6년 추사 김정희가 북한산에서 발견한 이래 현재까지 네 개의 신라 진흥왕 순수비가 알려져 있다. 순수비는 그야말로 경계를 표시하는 수단만은 아니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렇다면 진흥왕 순수비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일까.
KBS 1TV 'HD역사스페셜'은 9일 밤 10시 '진흥왕 순수비, 무엇을 새겼는가'를 통해 순수비에 담긴 비밀을 캔다.
4개의 순수비 중 하나인 경남의 창녕비. 일제 강점기, 소풍 간 학생들이 화왕산 골짜기에서 발견한 것을 일본인 교장이 자신이 발견한 것으로 둔갑시켜 오늘에 이르렀다. 현재 비석의 탁본은 엄격히 통제되고 있다. 제작진은 첨단 디지털 탁본 기술을 사용, 판독을 시도하다 주목할 만한 글자를 발견했다. 흔히 논 답으로 읽는 '畓'이란 한자. 이는 현재 사용되는 중국어 사전에도 없는 글자다. 그렇다면 이 한자는 진흥왕 시기, 중국과는 별개로 독자적으로 만들어진 한자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진흥왕 당시 신라와 백제는 100여 년에 걸친 나제동맹을 굳건히 유지하고 있었다. 고구려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서다. 551년에는 한강 유역을 나누어 차지하기도 했다. 그런데 갑자기 신라는 동맹을 깨고 백제의 한강 유역을 독차지했다. 왜 신라가 갑자기 동맹을 깨뜨렸느냐는 의문이 남는다. 학자들은 신라와 고구려의 밀약설을 제기하고 있다. 황초령 비문과 문헌 기록을 통해 이를 추적해 본다.
진흥왕 시대에 새워진 또 하나의 비 '단양적성비'는 고구려인의 공을 치하하고 포상하는 내용을 주로 담고 있다. 또한 '도설지'라는 인물도 등장하는데, 이 이름은 10년 후 세워진 창녕비에도 새겨져 있다. 도설지의 벼슬은 10년 사이에 두 단계나 높아져 있었다. 도설지는 신라의 대가야 정복 후 대가야의 왕으로 봉해진 인물. 진흥왕의 정복지 정책이 얼마나 철저히 계획되어 있었는지 도설지의 행적을 통해 추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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