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누군가 나를 필요로 하고 내가 할 일이 있을 때 행복을 느끼고 활기차게 살아갈 수 있다'고 한다. 나이 60이면 아직 한참 활동할 시기지만 직장에서는 이미 은퇴해야 할 시점. 20여 년은 더 남은 생애건만 할 일이 없다면 무엇을 하면서 생을 보낼까.
◇세 노인의 다른 일상
대구시 동구 봉무나비생태원에서 나비생태해설자원봉사팀의 총무를 맡고 있는 배영근(64·수성구 범물동)씨는 일주일 내내 바쁘다. 전직 교사 출신으로 나비생태 해설뿐 아니라 저소득층 아동들을 위해 한자교육 강사로도 나서기 때문이다."일하던 리듬이 깨지면 건강도 나빠지는데 은퇴 뒤 건강을 유지하면서 이왕이면 남을 도울 수 있는 일을 찾다가 이 일을 하게 됐습니다. 우리 회원 중에는 일흔이 넘으신 분도 있는데 다들 건강하세요.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즐겁게 봉사하는 것이 이 봉사팀이 잘 꾸려져 나가는 이유일 겁니다."
배씨와 회원들은 일반인에게 잘 알려진 호랑나비부터 은점표범나비, 줄꼬마팔랑나비 등 이름도 생소한 다양한 나비의 이름, 생태 등을 익히기 위해 구슬땀을 흘렸다. 지난해에는 전남 함평의 나비생태원에 연수를 다녀오기도 했다.
"얼마 전 코스를 조정한 대구시티투어에 나비생태원이 포함돼 부담도 되지만 좀 더 열심히 노력하면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을 겁니다."
김모(63·남구 대명동)씨는 수성구의 한 빌딩 청소원으로 일한 지 2년이 넘었다. 고졸 출신의 김씨는 중소기업의 영업직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고 4년 전 물러났다.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손주의 재롱을 보며 편안한 노후를 보내겠지만 빠듯한 살림살이의 김씨는 지속적인 수입원이 필요했다. 김씨의 한 달 수입은 80여만 원 정도. 여기다 자녀가 보내주는 용돈을 더하면 120만 원 정도로 생활을 꾸려나간다."요즘 같은 불경기에 특별한 기술이 없고 나이도 많다면 이만한 일자리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넉넉지는 않지만 조그마한 집도 있고 애들을 모두 출가시킨 터라 부부 둘이 살기엔 크게 무리는 없어요."
두 아들들이 서로 함께 살자고 하지만 따로 사는 것이 더 마음 편하다."힘이 닿는 한은 우리끼리 살고 싶어요. 벌써 뒷방 늙은이 신세가 되고 싶진 않습니다. 아들 내외 눈치보지 않아서 좋고 행락철에는 전세 버스에 몸을 싣고 여기저기 구경도 다닐 수 있으니까 몸은 좀 힘들어도 이 생활이 더 낫죠."
두류공원에서 만난 박모(65·여)씨는 거의 매일 손자를 유모차에 태우고 공원에 들른다. 박씨는 손자를 챙기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후딱 간다고 했다. 남편은 5년 전 암으로 저 세상으로 떠나보냈고 평생 가정주부로 살아온 박씨는 남편과 살던 집을 팔고 아들네에 몸을 맡기게 됐다."한평생 남편, 아이들 수발하느라 나 자신을 챙길 겨를도 없었어요. 해보고 싶은 것, 가보고 싶은 것이 참 많았지만 나이 들고 여유가 생기면 하겠다고 미뤄뒀는데 막상 이 나이가 되니 여의치가 않네요. 나이가 들면 무엇을 하며 보낼지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워둘 걸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박씨는 또래 남자 노인들이 공원에서 종일 앉아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보면 세상을 뜬 남편 생각에 자신의 일이라도 되는 양 안타깝다."저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가정을 꾸리느라 자신을 챙길 겨를이 없다가 막상 은퇴하고 나니 할 일이 없다는 걸 힘들어하더라고요. 특히 아버지들은 자식들과 마주할 기회가 어머니보다 적어 소외감도 더 큰 것 같아요."
◇알찬 노후를 보내려면
우리나라는 지난 2000년 고령화사회(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전체의 7%를 차지)에 진입한 이후 오는 2018년이면 고령사회(14%), 2026년에는 초고령사회(20%)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에 따라 노후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쏠리고 있지만 여건은 미비한 편. 최근 전국적으로 잇따라 열린 노인일자리 박람회에서도 일자리를 구하는 노인들의 다양한 욕구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올해 10월 17일 대구시는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노인일자리 박람회를 연다. 장소는 계명대학교 성서캠퍼스 실내체육관이며 달서 시니어클럽에서 행사진행을 맡는다.
시청 복지정책과 김일봉씨는 일자리를 찾기 위해서는 노인일자리 박람회에 참여하는 노인들의 생각이 달라져야 한다고 충고했다.
"생계를 위한 취업인지 여가를 보내기 위한 일자리 찾기인지 구분해야 마음에 맞는 일자리를 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본인의 마음가짐이죠. 체면만 생각하지 말고 육체노동일지라도 땀 흘려 일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긍정적 생각을 먼저 가지시면 일도 즐거워지고 건강도 유지하실 수 있을 겁니다."
대구시 노인종합복지회관은'큰나무 봉사단'이라는 이름의 노인봉사단을 10년째 운영해오고 있다. 현재 활동회원만 80여 명에 이르고 회원 중에는 80세가 넘은 이도 있다.
이곳 반용부 사무장은 자원봉사 분위기가 조금씩 확산되고 있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초창기 노인봉사단을 꾸릴 때 어르신들로부터 늙어서까지 또 몸고생 해야 하느냐는 말을 들은 적도 있어요. 하지만 어려운 이들을 돕고 사회적인 반향도 커지면서 생각들이 바뀌셨죠. 자원봉사에 대한 의식도 단순히 가진 것을 베푼다는 것에서 함께 나눈다는 쪽으로 많이 변했습니다"
그는"평생을 가정주부로 사신 분들도 얼마든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가 있으니 봉사활동에 참여하셔서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셨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채정민기자 cwolf@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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