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압 정부가 이끈 산업화 시절 시대의 화두는 반공이었다. 그 탓에 이른바 간첩단 사건은 나라안 모든 눈과 귀를 모았다. 나라전체를 얼어 붙게 한 대공사건은 국민을 향한 일종의 기합이기도 했다.
동백림 사건과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당시 상황을 대변해 준다. 조작이냐 실체적 사건이냐를 둔 논쟁은 지금껏 팽팽하다. 당시 중정 수사과장으로 다시 6국장으로 두 사건의 수사를 지휘한 이용택(李龍澤·75) 해외희생동포추념사업회장은 과거사를 부정하는 이는 물론 당시 사건의 피해자들에겐 '나쁜 사람'이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그는 지금도 "두 사건의 실체는 있었다"고 주장한다. 조작 주장과 실체적 사건이라는 주장의 간격은 의외로 멀지 않다. "난수표를 가지고 있다면 분명 간첩" "북한 방송을 글자 한자 틀리지 않고 받아 쓰는 일은 불가능"이 실체적 사건이라는 주장의 근거다. 그러나 수사를 당한 사람들은 "사용하지 않았고 애당초 그럴 생각도 없었기에 간첩 운운은 조작" "눈과 귀를 막은 독재 시절 북한방송을 통해 정보를 얻었을 뿐 직접적인 접촉은 없었다"고 한다.
양측의 주장을 듣고 보면 과거사 진상규명의 화두는 진실과 화해라는 의미로 다가 온다. 그 역시 "잘못된 부분을 답습하지 말자는 차원에서 진실을 찾고 억울하게 당한 이들이 있다면 바로 잡아 주어야 한다"고 한다.
학도병으로 전쟁에 참여한 후 박정희 전 대통령을 네번이나 모셨다. 그런 인연이 제대 후 살길을 찾던 그를 불러 올리게 했다. 중정 대공수사가 맡겨졌다. 말이 대공 수사지 반공이 국시던 당시 그의 수사영역은 전방위로 이어졌다. 지금 평가는 엇갈리지만 그는 "자유 민주사회를 수호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일했다"고 한다.
국회의원을 거쳐 김대중 정부 시절 경북관광개발공사 사장을 끝으로 공직을 떠났다.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 특보를 맡자 진의와 상관없이 세간에선 기회주의자로 매도하기도 했다.
75년 시작한 해외희생동포추념사업회 일에 열심이다. 시대상황에 희생된 동포들에게 아무런 관심을 주지 않는 우리 정부의 무관심이 안타깝다. 다시는 나라를 빼았겨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같이하는 회원들이 돈과 시간을 내 위령탑을 세우고 고혼을 달랜다.
자유민주수호국민운동총연합 집행위원장이기도 한 그의 눈에 지금의 사회는 혼란으로 다가온다. 너무나 소중한 인적자원을 통합, 동참시키기 보단 패가름하는 듯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한달에 한번 꼴은 고향 달성과 대구를 간다. 그가 보는 오늘의 대구는 자업자득이다. 박정희 이후 31년간 대구는 중앙 정부와 직접 통했다. 그탓에 안일하고 의타심이 강하다. 변화의 속도도 느리다. 세계 제일의 철강공장이 인근 포항에 있지만 철강관련 사업에 눈을 돌리는 이가 없다.
차기 대구 시장은 허황한 '공상가'가 맡아야 한다는 이색제안을 한다. 고속도로를 놓고 제철공장과 시멘트 공장을 세운 박정희도 당시 사회가 보기엔 돈키호테였다는 설명이다. 매일 아침 남산을 오르고 일요일이면 북한산을 타서 일까 여전히 강건하다. 젊은 사람들과 같이 어울리는 일도 마다하지 않고 즐긴다. 마산의 무학 소주를 운영하는 둘째 사위는 그가 하는 일을 돕는 후원자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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