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원숭이도 나무에서 반드시 떨어진다.

늘 완벽해 보이는 배우들도 무대에서 간혹은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하곤 한다. 그래서 극 전체를 뒤틀리게 만들기도 하고, 관객들에겐 예상 외의 즐거움을 안겨 주기도 한다. 연극이라는 장르는 영화나 드라마와는 달리 현장성이라는 특수한 명제가 있기에 다시 촬영이 가능한 NG와는 달리 한번 뱉으면 다시 주워담을 수가 없다. 그러기에 이 실수야말로 더 재미있고, 훨씬 더 극적이다.

우선은 연극계에서 전설같이 내려오는 일화들을 살펴보면, 1970년대 극단 '인간무대'에서 '햄릿'을 공연할 때 중간에 효과 음악이 들어가는데, 당시 이것을 책임지던 K씨가 버튼 조작을 잘못해서 릴 테이프를 반대쪽으로 돌아가게 하는 바람에 한창 심각한 장면에서 가수 배호 씨의 대중가요가 흘러 나와서 객석이 웃음바다가 되었다고 한다. 1978년엔 극단 '원각사'가 '이수일과 심순애'를 제작하여 지방 순회공연을 할 때 경주에서 생긴 일인데, 지금은 고인이 된 김중배 역의 H씨가 부인인 심순애를 실감나게 따귀를 때리는 연기를 하자, 이를 실제로 알고선 객석의 한 할머니 관객이 벌떡 일어나서는 "거 어지간하거든 용서해 줘라"라고 하는 바람에 폭소가 터져 공연이 잠시 중단되기도 했다. 1979년에는 역시 극단 '원각사'가 '대머리 여가수'를 울산 YMCA 초청으로 공연할 때 일이다. 스미스 역을 맡은 H씨가 평소에도 워낙 땀을 많이 흘리는데, 마침 공연 시기가 7월의 한여름 날씨에다가 냉방시설도 안 된 공연장에서 그것도 입추의 여지없는 관객을 채우고 공연을 진행하던 중이다 보니, 흘러내리는 땀을 주체하지 못하고 주머니에 있던 휴지를 꺼내어 슬그머니 훔친다는 것이 그만 그 한 조각이 얼굴에 붙어서 대사를 할 때마다 아래 위로 널뛰기를 해대니 공연장은 그야말로 웃음 도가니가 될 수밖에 없었다.(이필동 저, 대구연극사 발췌)

그리고 최근에 공연된 작품을 중심으로 보면 시립극단에서 공연한 '춘심홍로줄'에서 홍길동 역을 맡은 K씨가 신발 뒤에 롤러가 달린 힐리스를 타고 나오다가 무대에서 넘어져 웃음바다를 만들었다. 또한 극단 '마카'에서 '해가 뜨면 달이 지고'를 공연하면서 보통은 후배들이 선배들 소품까지 챙겨 놓는데, 이 날은 서만칠 역의 P씨가 극 중간에 우성준 역의 S군 다리를 묶는 장면이 나오는데 미처 줄을 준비해 놓지 않았다. 다급해진 H씨는 순간 기지를 발휘해서 옆에 있던 청테이프로 묶긴 했지만 객석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는 잠재울 수가 없었다.

이밖에도 셀 수 없는 에피소드들이 공연마다 나오는데, 어쩌면 연극의 또 다른 묘미가 이런 실수들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러고 보면 원숭이는 나무에서 반드시 떨어지는 것이 맞다. 관객들이여 이제는 공연장에서 작품만 관극하지 말고 떨어지는 장면도 놓치지 말고 즐기시기 바란다.

극작가 김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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