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자녀 장래 확 바꾸는 대구의 孟母

과학영재학교 합격생 학부모 7명

요즘 학생들의 공부는 실력보다 정보가 좌우한다는 말이 있다. 학교 시험에서부터 각종 경시대회, 수능시험, 대학별 고사 등 거쳐야 할 많은 시험들이 평가 의도, 출제 경향, 채점 기준 등에서 워낙 제각각인 데서 나온 얘기다. 결국 실력을 바탕으로 하되 매 시험과 관련된 정보를 최대한 수집해 맞춤식 대비를 하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라는 의미다.

실력 쌓기에도 시간이 부족한 학생들에게 정보 취득을 위한 노력까지 강요하는 건 무리. 여기서 결정적인 힘을 발휘하는 사람이 바로 학부모다. 특히 엄마의 힘은 자녀의 삶을 바꿔버릴 정도로 강력하다.

그렇다면 우수한 학생들의 엄마는 어떤 노력을 할까. 마침 경북대 과학영재교육원에서 2006학년도 한국과학영재학교 입학시험에 자녀를 합격시킨 대구 학부모 7명과 합격생들을 초청해 조촐한 축하연을 연다는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갔다. 여느 때 같으면 학생들을 취재했겠지만 이날은 엄마들의 말 한 마디, 탄성과 한숨 하나하나에 신경이 쏠렸다.

◇ 아이는 안 가도 엄마는 간다

24일 저녁 대구 북구의 한 음식점. 어지간히 시간을 맞춰 갔는데 벌써 모두들 모여 이야기가 한창이었다. 합격생이 7명이라고 했는데 학생은 4명뿐이었다. 집안 사정이나 학원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둘러보니 엄마는 7명 모두 와 있었다. '아이도 없는데 어찌 혼자 왔을까?' 하며 쳐다보니 엄마들의 눈빛은 좋아하는 수업을 듣는 학생들처럼 하나같이 진지했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이는 황의욱 경북대 과학영재교육원장과 현재 한국과학영재학교 3학년인 추승우 군의 엄마였다. 영재 교육 전문가와 한 걸음 앞서 간 선배 엄마의 이야기인데 집중할 수밖에. 도움이 될 말은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했다.

엄마들에게 자녀 교육을 어떻게 시켰는지 묻자 쭈뼛쭈뼛 "책 읽는 걸 워낙 좋아해서 그저 책이나 사 줬을 뿐 도와준 것도 없다"(도원중 노희수 군 엄마), "해 달라는 건 어지간히 해 줬는데 지나고 보니 그 이상 못 해 준 게 아쉽다"(범일중 백지윤 양 엄마) 등 자랑할 것도 없다고들 했다. 자식의 성공 뒤에서 묵묵히 웃음 짓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한국 엄마들의 전형.

그러다 한 엄마가 "입학 전에 해야 할 공부가 이만저만이 아닌데 현재 중학교 과정 때문에 어렵다"고 하자 와르르 말들을 쏟아냈다. 영재학교 입학 후 올림피아드 참가 문제, 국내 대학과 해외 유학 선택 문제 등에 대해서도 걱정을 함께 하며 좋은 방법이 없을까 질문을 퍼붓는 모습은 하나같았다.

◇ 빨리 눈 뜰 기회를 제공한다

선배인 추승우 군의 엄마가 말을 꺼냈다. "남다르게 키우려면 적어도 초등학교 때부터 엄마가 준비해야 합니다. 초등학교에서 1, 2등 하는 데 만족할 게 아니라 시야를 넓힐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경북대 과학영재교육원이나 교육청 영재반 같은 곳에 보내는 게 필요하죠."

김정환(학산중) 군, 류정민(범일중) 양의 엄마가 "공부는 스스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영재교육원에 보내고 나서 확 달라졌어요. 높은 수준의 아이들과 책읽기, 공부 등을 공유하면서 함께 성장하는 것 같더군요"라며 동의했다. 신광순(경신고) 군의 엄마가 말을 받았다. "학교만 잘 보내면 된다는 생각에 초등학교 때는 영재교육원이 있는 줄만 알았지 언제 어떻게 보내는지 전혀 몰랐어요. 그런데 교육청 영재반, 과학고 영재반 등에 들어가서 애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경시대회나 탐구대회 같은 데를 다니기 시작하더군요. 그 덕에 과학영재학교에 갈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일찍부터 영재교육원에서 공부하면 실험이나 실습을 많이 하기 때문에 진학해서도 크게 달라지죠. 준비된 아이들이 더 좋은 학교에 가고, 더 잘 적응하고, 더 잘 실력을 쌓는 겁니다. 엄마들로선 가능한 많이 설명회나 강연회 같은 데 다니면서 정보를 얻고 배워야 합니다. 앞서 간 엄마들을 벤치마킹만 해도 얻는 건 많습니다." 승우 엄마가 마무리했다.

◇ 급해도 믿을 곳은 많다

황의욱 원장이 엄마들의 노고를 격려하며 화제를 돌렸다. "그동안 엄마들이 경시대회나 영재교육원 입학 등에서 사교육에 많이 기댈 수밖에 없었는데 점차 바뀔 겁니다. 경북대 과학영재교육원은 당장 올해부터 선발 방식을 바꿀 계획입니다. 주·객관식 시험으로 2, 3배수를 뽑긴 하지만 최종 선발은 3박4일 정도의 캠프를 통해 결정합니다. 학원에서 문제풀이를 하는 방식으로는 대비하기가 힘듭니다. 진짜 영재성이 있고 창의력이 뛰어난 학생들을 뽑기 위한 방식입니다. 사교육 걱정 좀 덜어도 될 겁니다."

모인 엄마들은 대부분 사교육 의존도가 높지 않을까 했는데 김도훈(경신중) 군의 엄마가 다른 얘기를 했다. "우리 애는 중학교에서 많이 배운 것 같아요. 선생님들이 잘 이끌어줘서 공부를 참 즐거워했어요. 개인적으로 경시대회에 참가하는 것보다 학교에서 보내는 전람회나 탐구대회에 많이 보냈습니다. 대회가 임박하면 학교에서 하루 대여섯 시간씩 맡아서 지도해줘 참 고마웠습니다." 엄마들은 "맞다 맞다" 고개를 끄덕였다. 의외로 학교 교육에 대한 신뢰가 높았다.

자녀에 대한 믿음은 더욱 컸다. "중학교 1학년 때 과학영재학교 시험을 치는데 책만 읽고 준비하겠다고 하더군요. 하루 대여섯 권의 책을 읽어나가는데 원하는 책 사주는 것만 하자 싶었죠. 3차 시험에서 떨어졌지만 급할 게 없다고 생각하고 제가 좋아하는 공부 하도록 놔뒀어요." 김선규(지산중) 군의 엄마 말에 모두들 "공부는 제가 하는 거죠" 하며 입을 모았다. 자녀 교육에 대한 조급함과 욕심을 진정시켜주는 믿음이 있었기에 큰 탈 없이 아이들이 잘 성장하고 있다는 듯.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사진: 한국과학영재학교에 합격한 대구지역 학생들과 어머니들이 황의욱 경북대 과학영재교육원장과 간담회를 가진 뒤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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