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퍼퓰리즘? 쉬운정치? 속빈강정!…국정감사 중간평가

'퍼퓰리즘이냐, 쉬운 정치냐?'

3일로 17대 국회 첫 국정감사가 중반을 넘겼지만 예년과는 확연히 다른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과거 핵폭탄급 게이트가 터지고 '폭로전쟁'으로 시끄럽던 것이 '촛불 국감' '한복 국감' 등 신 유행어를 남긴 이벤트성 활동으로 대체되고 있는 분위기다. 이벤트를 주도한 의원들은 "쉬운 정치를 위해서…"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정작 내용은 빈약한 데 대해 일각에서는 "퍼퓰리즘적 사고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됐다.

◇튀는 것은, 여야 같고

국감이 시작된 지난달 22일 국회 문광위 소속 의원들은 한국의 전통 문화를 널리 알리자는 취지에서 여야의원 모두 한복을 입고 회의를 열었다. 점심시간에는 의원들과 증인 등이 함께 대형 비빔밥을 비비는 '한류 이벤트'도 마련했다.

같은 날 농해수위 소속 열린우리당 이영호 의원은 국감장 바닥에 중국산 땅콩 2포대를 쏟았다. 중국산 땅콩이 세관에 신고되지 않고 들어오는 문제를 지적하기 위해서였다. 이 의원은 "똑같은 땅콩인데, 신고된 것은 높은 가격에, 신고되지 않은 것은 낮은 가격에 팔리고 있다"면서 "두 땅콩을 가려보라"고 농림부 관계자들에게 주문했다.

산자위는 27일 전기가 없는'촛불 국감'을 실시했다. 전기의 소중함을 알고 저소득 단전 가정의 어려움까지 돌아보기 위한 취지라며 마이크를 포함한 모든 전원을 끄고 촛불로 국감장을 밝혔다. 김용갑 위원장은"천정부지로 치솟는 국제유가에도 불구하고 전기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며 "실무 담당자에게 좋은 경험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29일에는 재래시장 문제를 직접 체험하자며, 대전시 중동 중앙시장에서 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이벤트를 위한 소재도 다양했다. 행자위 소속인 한나라당 이재오 의원과 열린우리당 박명광 의원은 각각 성인오락실과 변종 성매매 현장을 담은 '몰래카메라 동영상'을 들고 나왔다. 또 죽창과 죽봉(행자위·한나라당 이인기 의원)에다 하이브리드 자동차(환노위·열린우리당 제종길 의원), 방연마스크(행자위·열린우리당 최규식 의원)까지 각종 '튀는'준비물들이 등장했다.

◇생각은, 여야 다르고

같은 이벤트를 진행하면서도 여야의 속내는 달랐던 것으로 나타났다.

산자위 '촛불 국감'에서 여야는 흐릿한 촛불로 국감 자료를 보다 갑자기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국감장을 방문하자 금방 열을 올리며 공방을 벌였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당 대표가 '격려차 오신' 것을 환영했으나 여당 의원들은 "차려놓은 밥상(촛불 국감)에 숟가락 놓으려 왔느냐"며 퇴장을 종용했다.

문광위 '한복 국감'도 마찬가지. 한복을 입는 방식에서도 여야 차이는 분명했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개량한복을 선보인 반면 한나라당 의원들은 두루마기까지 갖춘 전통한복을 착용해 미묘한 신경전을 벌였다.

속내가 다른 여야 덕분에 피감기관만 편했다는 지적이다. 문광부 국감에서 문화부는 그냥 고비만 넘기자는 식으로 "열심히 해보겠다" "검토하겠다"는 식의 답변만 거듭했다.

◇일부에선, 자성론도

이같이 '튀고' '이벤트·홍보'만을 강화한 여파 때문인지 이번 국감에서는 큰 이슈가 부각되지 않았다. 의원들이 보여주기에 급급해 내실을 다지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여야 지도부도 이같은 문제점에 공감했다.

한나라당 강재섭 원내대표는 최근 산자위의 '단전 국감'에 "단전상황을 꼭 경험해봐야 아느냐"며 일침을 놓았다. 강 대표의 한 측근은 "원내대표 스타일이 원래 퉁명스러운 면도 있지만 민생국감, 정책국감을 하자고 거듭 말해도 소속 의원들이 자료와 질문으로 여론의 주목을 끌기보다 이벤트로만 승부하려는 데 대해 지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열린우리당 정세균 원내대표도 2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국정감사에 대해 자화자찬만 하다가는 국민이 분노한다"며 "국정감사가 효율적인가 하는 의문은 지금도 여전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박 겉핧기식' 국감이 되지 않아야 한다며 국정감사 상설화를 주장했다.

박상전기자 mikypar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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