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어려울 수 있을까요."
대구에 빈 점포들이 넘쳐나고 있다. 어딜 가도 셔터 문을 내려놓은 점포와 '매장정리중'이라는 푯말이 먼저 눈에 띈다. 빈 점포의 수가 늘어나는데도 대형쇼핑몰, 지하상가, 아파트 상가 등이 잇따라 들어서는 혼돈상황이 계속되고 있었다. 영세업자들의 한숨소리도 높아간다.
■침체를 거듭하는 중심상권
대현프리몰(구 중앙지하상가)에서 청바지가게를 하는 신봉훈(52)씨는 지난달 7평짜리 점포를 반으로 잘라 반납했다. 신씨가 계약만기 1년을 남기고 위약금 600만원까지 문 것은 '할 수록 손해'라고 판단했기 때문. 신씨는 "한때 월 1천500만원을 상회했던 매상이 400만원으로 줄어 물건값 남기기도 힘들어졌다"고 했다.
4천300개 점포가 밀집된 동성로에는 로데오거리 같은 신흥 밀집거리를 조금만 벗어나도 빈 점포가 쉽게 보였다. 3년전만 해도 발디딜 틈이 없었던 '야시골목'에도 여러 곳이 문을 닫아 한적한(?) 모습이었다.
대한부동산 서태일씨는 "동성로 점포중 20% 정도는 비어있다고 보면 될 것"이라면서 "얼마전만 해도 동성로에 들어오려는 상인들이 줄을 서다보니 임대푯말 붙을 사이가 없었는데 요즘은 최악의 상황"이라고 말했다.
특히 저층 건물의 경우 4, 5층이 빈 곳이 많았다. 부동산 관계자들은 지상 5층 규모를 기준으로 할 때 지상 3층까지만 임차가 되는 실정이라고 했다. 최근 4, 5층을 차지했던 당구장, PC방이 쇠락하고 미용실이 아래층으로 내려오면서 중간 규모의 건물 공실률이 크게 높아졌다.
이같은 현상은 오랜 불경기 탓이 크지만 밀리오레, 엑슨밀라노 등 대형매장의 부진도 한 원인이다. 동성로 상인들이 대형쇼핑몰로 매장을 옮겨갔다가 큰 손해만 본채 U턴을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김모(49.여)씨는 4년전 대형 패션몰에 점포 10개를 분양받았다가 매출부진으로 2년전 장사를 포기했다. 그는 "빚만 잔뜩 져 가정불화가 생겼다"면서 "보증금을 돌려받기 위해 운영업체와 소송을 벌이는 상인들이 많다"고 했다.
엑슨밀라노(구 한일극장)는 지난 2000년 개점 당시만 해도 450여개 점포가 있었으나 현재 80여곳이 빠져 나갔다. 길 건너편의 밀리오레 빌딩은 아예 '개점휴업'상태였다. 5년전 패션쇼핑몰 붐과 함께 25층 건물, 500여개 점포로 화려하게 출발했으나 현재 지상 1층, 지하 1층의 의류·잡화점 등 100여개만 남은채 2∼7층 상가는 텅 비어있다.
밀리오레 주변 상가도 동반 쇠락했다. 북편 동성로 상가(한일극장 건너편∼대우빌딩)는 대구역 롯데백화점의 '통로'로 전락하면서 주변 은행이 문을 닫는 오후 4,5시만 되도 거리가 텅 빈다. 매물로 나온 빈 점포만 20곳이 넘는다.
장병국 동성로상가번영회장은 "대형 쇼핑몰의 부진이 동성로 전체 상권에 악영향을 미쳤다"면서 "앞으로 대형 쇼핑몰이 더 들어서고 지하철 2호선이 개통되면 상권이 어떻게 바뀔지 불안하다"고 했다.
상인들은 빈 점포 수가 늘어나는데도 대형쇼핑몰·아울렛(9개), 지하상가(6개) 등이 계속 들어서는 것은 '예고된 실패'로 해석했다. 점포 공급이 포화상태인데 대형매장이라도 그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빈 재래시장·아파트 상가
주상복합건물·아파트 상가도 썰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대구에서 가장 비싸다는 수성구 황금동 덕원고앞 태왕아너스 아파트 상가에는 5곳중 1개만 입점해 있다. 동구 효목동의 태왕메트로시티에는 60여개 상가중 40개가 제주인을 못찾고 있다. 강호성(54) 상가번영회장은 "20여개 점포중 부동산 업소만 4개이고 아파트 안쪽으로 들어설수록 빈 곳이 많다"고 했다.
지난달부터 입주가 시작된 수성구 범어동의 코오롱하늘채에도 24개 상가중 10개 정도만 입점이 예약돼 있다. 임거택 상가 분양소장은 "요즘같은 불경기에 주상복합건물은 상가분양이라는 리스크를 안고 출발해야 한다"면서 "대부분 건설업체는 상가 대신 오피스텔을 짓는 방법으로 위험부담을 줄이려 한다"고 했다.
재래시장은 대형소매점 직격탄을 맞아 상인들의 시름이 가중되고 있었다.
칠성시장에는 노점상 자리가 600여개나 비어있다. 도로쪽에는 점포가 빽빽이 들어서 잇지만 조금만 안으로 들어가면 빈 점포들이 눈에 띈다.
유원길 상가번영회장은 "이면도로변에는 셔터를 내린 점포가 꽤 많다"며 "상인들 사이에 전체 경기가 어려운 가운데 대구는 더 어렵고 재래시장은 완전히 내리막길이라는 푸념이 많다"고 전했다.
4천300여개 점포가 밀집된 서문시장에는 빈 점포가 100개를 넘어섰고, 800여개 점포가 있는 팔달신시장도 빈 점포가 40개나 됐다.
시내 빌딩의 공실률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대구 중구청이 지난달말 점포 수를 기준으로 부과하는 시내 빌딩 9곳에 대한 환경개선부담금 추이를 조사한 결과 교보생명, 동양금융센터 등 6곳의 하반기 부과액이 상반기보다 평균 20% 가까이 떨어졌다.
봉산동 모증권 빌딩의 경우 전체 8개층 중 4개층이 비어있고 이중 3개층은 1년째 빈 사무실이다. 한 임대업자는 "시내 중심가에 이름난 대형빌딩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빌딩 사무실의 30, 40% 이상이 비어있다"고 했다.
기획탐사팀 박병선 기자 lala@mdnet.co.kr 최병고 cbg@msnet.co.kr 서상현 기자 ss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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