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통영의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유치환은 그리운 이에게 편지를 써보냈다.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고.
시인은 가고 하 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시 '행복'을 읊조리는 사람들은 예나 이제나 그 간결하고도 진정어린 고백에 마음 한 귀퉁이가 저릿해지곤 한다. 참으로 청마 그이처럼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한마디 말할 수 있다면… 그런 사람은 분명 나그네 같은 생(生)에서 잠시나마 참행복의 결을 찾아낸 사람이리라.
제주의 오름(산)과 들판에 홀려 제주에서 바람처럼 살다 마흔일곱 나이에 홀연히 사라져 간 사진작가 고(故) 김영갑. 온몸이 굳는 루게릭병으로 체중이 40kg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마지막까지 카메라를 놓지 않았던 사람. 굳어가는 몸으로 돌을 나르고 꽃과 나무를 심어 시골 폐교를 아름다운 갤러리로 변모시킨 기적의 연출자이기도 했다.
건강했을 때 그는 때때로 산다는 일이 싱거워지면 들녘으로 바다로 나갔다. 그래도 간이 맞지 않으면 마라도로 건너가 며칠이고 수평선만 바라보며 외로움 속에 자신을 내버려 두었다. 울적할 땐 바느질을 하며 마음을 달래기도 했다. 평생 홀로였던 그에겐 기다림이 삶이었고, 지독한 외로움과 가난이 친구였다. 오로지 홀현홀몰(忽顯忽沒), 문득 나타났다 사라지는 찰나의 아름다움만이 그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정식으로 사진 공부를 한 적도 없건만 그의 작품은 사람들의 마음을 잔잔히 흔들고 있다.
60억 원대의 부자 할머니가 가족문제로 인한 우울증으로 자살한 사건이 두어 달 전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할머니를 떠났던 남편이 자식들을 상대로 유산싸움에 나섰다 한다. 돈으로는 결코 행복을 살 수 없음을 보면서도 여전히 돈 때문에 부모자식 간에 낯을 붉히다니. 그야말로 "돈이 뭐기에"다.
김영갑은 이제 한 마리 나비가 되어 제주의 산과 들을 훨훨 오르내리고 있을 것이다. 속인의 눈엔 불행해 보일지 몰라도 마지막 순간 그는흐뭇한 미소를 지었을 것같다. "가난해도, 외로워도 진정 행복하였네라." '슬픔만 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 어느 시인의 시집 제목이 그의 이름 위에 겹쳐진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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