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가에서-손으로 읽는 책

이른바 편집장이로 살면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숙제 같은 것이 있다. 음악을 손으로 만져야 하고 미술작품을 귀로 보아야 하는 우리 이웃에게 지고 있는 빚이 그것이다.

사물을 보지 못하고 소리를 듣지 못하는 장애우들이 이 좋은 세상의 문화 혜택을 조금이라도 더 누리게 할 수는 없는 것인가. "당신도 언제나 장애인이 될 수 있습니다"라는 표어가 결코 과장이 아니기에 더욱 절실하다.

앞을 보지 못하는 장애우들은 점자서적을 이용한다. 최근에는 귀로 듣는 책이라고 해서 책을 낭독한 소리책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형태의 책들은 그 양이나 질 면에서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일반 책들에 비해 조족지혈(鳥足之血)에 불과하다.

그 이유는 점자책이나 소리책이라는 것이 일반 책자에 비해 엄청난 제작비와 제작 기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형 출판사조차도 기피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지금까지 보급된 점자책이나 소리책은 장애우 전문교육기관이나 시민단체 등에서 자원봉사자들의 봉사활동과 비용지원으로 어렵게 제작해서 보급한 것들이었다.

년 전에 점자책 제작 시장 조사를 했었다. 점자책을 제작하려면 일반 서적 제작 형태와는 전혀 다른 점자 입력기가 있어야 하고 점자 제판기, 점자 인쇄기와 제본설비가 기본적으로 필요했다.

그에 따르는 숙달된 인력은 말할 것도 없고. 솔직히 군소 출판사로서는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공사다망(公私多忙) 하시고 늘 예산부족으로 어려워하시는 나랏일 하시는 어른들께도 하소할 형편이 아니다.

편집장이라면 언젠가는 풀어야 할 이 숙제, 그러나 묘책이 없으니 갑갑할 뿐이다.

박상훈(소설가·맑은책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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