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벤 버난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을 차기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으로 지명, 18년간에 걸친 앨런 그린스펀(79) 의장 시대가 사실상 막을 내렸다.
그린스펀 의장은 지난 1987년 6월 폴 볼커의 후임으로 FRB 의장에 오른 이후 자신의 재임기간을 미국 역사상 가장 급격한 경제성장과 저인플레 시대로 만들면서 ' 경제대통령'이란 칭호를 얻을 정도로 미국 경제는 물론 국제경제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그린스펀 의장이 처음부터 시장으로부터 환영받은 것은 아니었다.
로널드 레이건 당시 대통령이 볼커 의장의 후임으로 컨설팅업체인 '타운센드 앤드 그린스펀' 대표인 그린스펀을 지명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뉴욕증시의 다우지수는 큰 폭으로 하락했으며 채권가격도 5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다.
한마디로 시장은 그린스펀이 당시까지 미국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FRB의장으로 평가받던 볼커의 능력에 미치지 못할 것이란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 셈이었다. 그러나 뉴욕증시는 그 다음날 전날의 낙폭을 뛰어넘는 상승폭을 나타내면서 1990년대 신경제의 도래와 함께 시작된 번영의 시대를 이끈 이른바 '그린스펀 효과'를 예고했다.
그린스펀 의장은 취임 후 두 달여가 지난 1987년 10월 19일 이른바 '검은 월요일' 로 불리는 주가의 대폭락으로 시장이 위기에 처했을 때 불과 한 줄짜리 성명으로 시장의 불안을 잠재우며 자신에 대한 시장의 신뢰를 키워갔다.
그린스펀은 이후에도 대공황 이래 가장 심각한 금융공황으로 평가받는 저축대부조합 대량파산사태와 1994년 멕시코를 시작으로 동아시아(1997년)와 러시아(1998년), 아르헨티나(2002년)로 이어진 금융통화위기 등 수많은 위기의 순간을 맞았으나 예리한 분석력과 강한 추진력을 바탕으로 이를 극복해냈다.
그린스펀 의장이 위기를 헤쳐나가면서 이끌어간 1990년대는 미국 역사상 1960년대에 버금가는 안정과 풍요의 시기였다. 당시 미국 경제는 물가와 실업률은 동시에 떨어졌음에도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인플레 없는 성장 한계치로 인식되던 2.5%를 훨씬 넘는 3.2%를 기록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우호적인 주변적인 여건도 영향을 미쳤지만 경제현상에 대한 그린스펀 의장의 예리한 판단력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을 부인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1996년부터 시작된 FRB의 '비개입정책'은 경제의 변화에 대한 혜안의 결과였으며 그린스펀은 당시 대내외적인 금리인상 압력에도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견지함으로써 '경제대통령'의 이미지를 확고히 했다. 그러나 '통화정책의 거장'이라는 찬사에도 불구하고 그린스펀이 남긴 버거운 유산 역시 적지않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경제대통령' 그린스펀에 대한 지나친 신뢰가 무모한 투자를 야기하기도 했으며 위기 시마다 통화공급을 확대하면서 잉태된 각종 버블에 대한 논란 역시 아직 해소되지 않은 상태이다. 쌍둥이 적자 문제도 역시 미해결 과제로 남아있다. 그린스펀 의장은 내년 1월 31일 퇴임한다.
뉴욕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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