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국소성 분질성 사구체경화증' 앓는 김병지 군

"엄마? 몇 살되면 내 병 다 낫나요"

병지(5·대구시 달성군 다사읍 서재리)는 병실에서 심심하면 나와 오목을 둔다. 가끔은 간호사들도 병지의 상대가 되어준다. 얼마 전부터 배우기 시작한 바둑의 재미에 흠뻑 빠졌지만 한 달의 절반은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기 때문에 바둑학원에 다니기도 쉽지 않다. 덕분에 바둑을 두지 못하는 나와 오목을 두면서 심심함을 달래는 것이다. 무료로 바둑을 가르쳐 주면서 병지를 아껴주시는 동네 바둑학원 원장님도 병지를 기다리실 텐데….

2년 전 병지의 몸이 붓기 시작했을 때 처음엔 살찌는 것으로 알았다. 하지만 병원에선 '국소성 분질성 사구체 경화증' 진단을 내렸다. 처음 들었을 때 이름을 외우기조차 어려웠던 이 병은 만성 신부전의 전 단계로 지속적인 혈액투석이 필요한 병이란다. 신장이식까지 각오해야 한다고 들었다.

수시로 병지의 몸을 찌르는 주사바늘을 보고 있기가 겁이 난다. 병지도 병원 오기가 두려운 모양인지 좀처럼 아픈 내색을 하지 않는다. 얼굴이 붓고 복수가 차 숨쉬기가 힘들고 아프면 그제서야 병원에 가자고 한다. 병원에 입원하면 아침마다 혈액검사를 한다고 바늘로 찔러야 하니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버거울 법도 하다.

한참 잘 먹을 나이인데 음식을 가려 먹여야 하는 것도 마음 아프다. 염분이 적은 음식을 먹어야 하므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자도 먹일 수가 없다. 2년째 투병생활을 하다 보니 이젠 병지가 알아서 먹을 것을 가린다. '이거 먹으면 또 병원 가야 돼' 하는 것을 보면 안쓰러워 해야 할지, 착하다고 칭찬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종종 병지를 혼자 두고 집을 나서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병지는 나와 떨어져 있는 것을 싫어하지만 어쩔 수 없다. 집 근처 식당에서 오후 6시부터 5시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기 때문이다.

이웃 아주머니가 우리 사정을 알고 자신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일을 도와달라고 했다. 집에 있을라치면 '일하러 오라'고 불러내지만 내 자존심이 상하지 않게 돕고싶어 하는 마음을 알기에 고마울 따름이다. 그렇게 해서 손에 쥐는 돈은 하루 1만5천 원. 우리 형편에 소중한 돈이지만 병지 병간호 때문에 이마저 매일 가기는 쉽지 않다.

병지 아버지는 공사장에서 막일을 한다. 현장에 나가서도 병지 걱정에 수시로 전화를 해댄다. 가족 중 환자가 있는 집은 다 그렇겠지만 우리 집 역시 모든 신경이 병지에게 쏠려 있다. 큰아들 병원(7)이는 자기가 알아서 밥을 챙겨 먹고 학교에 간다. 초등학교 1학년인데도 엄마가 힘든 것을 아는지 스스로 하는 것을 보면 대견스럽다.

병지라는 이름은 아이 할아버지께서 지어주신 이름이다. 그러고 보니 축구선수 김병지와 이름이 같다. 우리 병지도 축구를 참 좋아한다. 아프기 전엔 동네 학교 운동장에서 일을 마치고 온 아버지와 공을 차곤 했다. 다시 병지가 운동장에서 뒹구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김병지 군의 어머니 천순희(37) 씨는 걱정거리가 늘었다. 병지 치료비로 한 달에 100만 원 가까이 들어가지만 날씨가 추워지면 남편 일감이 드물어져 수입이 눈에 띄게 주는 탓이다.

"우리 부부가 열심히 일해 빚도 갚고 아이들 공부도 시키겠다는 꿈조차 꾸기가 쉽지 않네요. 의료보험혜택이라도 제대로 받을 수 있으면 부담을 덜 텐데 병지 치료비 중 일부만 의료보험 대상이라 어깨가 무겁습니다. '몇 살이 되면 다 낫느냐'고 병지가 물을 때면 곧 괜찮아질 거라는 말밖에 할 수 없는 현실이 너무 슬퍼요."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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