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살인의 추억'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룬 영화 '살인의 추억'은 1980년대를 절묘하게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치 사회적으로 암울하고 어수선했던 분위기 속에서 독버섯처럼 피어오른 연쇄 살인 사건은 그 시대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일 수 있다. 영화는 음습하게 찾아오는 살인의 공포와 범인을 쫓는 경찰의 폭력성을 어두운 화면과 결코 밝게 여겨지지 않는 밝은 화면을 크로스시키면서 흥미있게 그려내고 있다.

◇ 묘하게도 연쇄 살인에 대한 공분과 공포 때문인지, 영화에서 폭력과 고문을 일삼는 형사들이 관객의 미움을 사지 않는다. 경찰력이 시국사건에 총동원되다시피 했던 시대에 범인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형사들에 대한 동정일지도 모른다. '살인의 추억'은 관객 500만을 동원, 대박을 터트리면서 화성 연쇄 살인 사건 수사에 다시 박차를 가하게 하는 작용을 했다.

◇ 사건은 1986년 9월 15일 화성시 태안읍 안녕리 목초지에서 70대 노파가 하의가 벗겨진 채 살해되면서 시작됐다. 이후 1991년 4월 3일까지 4년 7개월 사이 화성시 태안읍을 중심으로 반경 3㎞이내 지역에서 10명의 부녀자가 강간 살해 당했다. 이 중 13세의 박모 양이 집에서 살해된 8차 사건의 범인만 잡혔을 뿐이다. 그러나 연쇄 살인과는 범행 수법이 달라 모방 범죄로 확인됐다.

◇ 지금까지 동원된 경찰력은 205만여 명, 단일 사건 최다 기록이다. 사건과 관련해 경찰의 수사를 받은 사람이 2만1천280명, 지문 대조자 4만116명, 모발 감정 180명 등이다. 성폭행을 당한 뒤 도망쳐 간신히 목숨을 건진 피해자의 진술에 따르면 범인은 단독범으로 나이는 20대 중반, 키 160∼170㎝ 정도의 호리호리한 몸매였다고 한다. 경찰은 범인이 죄책감을 못 느끼고 범행 자체를 즐기는 '사이코패스(psychopath)'라고 추정한다.

◇ 사건 발생 15년이 지나 하나둘 공소시효가 만료되고 조금만 더 지나면 범인을 잡아도 처벌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9차 사건의 공소시효 만료일이 오늘이다. 그리고 마지막 10차 사건은 내년 4월 2일로 끝난다. 화성 살인마에겐 공소시효를 없애야 한다는 여론이 분분하자 살인 사건의 공소시효를 연장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으나 범인을 잡는 일이 급선무다. 잔혹한 살인을 추억으로 돌릴 수는 없다.

김재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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