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애착이 가는 시절이 있다. 즐겁고 신났던 시간을 떠올리면 오늘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고팔프지 않다. 어느 직업보다 부침이 심한 정치인, 그 중에서도 일선에서 물러난 이들을 만나보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국회의원 시절을 인생의 보람으로 기억하고 내세우는 이는 흔치 않다. 그보다는 손 때를 묻히고 땀을 흘리며 이런 저런 토대를 쌓아 올린 시절을 그리워한다. 견제와 감시로 대표되는 의원의 역할이 주는 한계 때문일지도 모른다.
박세직(朴世直. 72)한국청소년마을 총재는 누구보다 경력이 다채롭다. 수경사령관을 끝으로 군을 떠난 뒤 총무처 장관, 체육부 장관, 서울올림픽.아시안게임조직위원장, 안기부장, 서울시장을 거쳤다. 국회의원도 재선을 했다. 어떤 호칭으로 부를까를 물어봤다. 거침없이 위원장(올림픽조직)으로 불러 달란다.
이 시절이 가장 소중하게 남아 있는 모양이다. 서울 올림픽은 한국 경제와 사회 문화 수준을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대역사다. 얼마전 월초에는 중국에서 그가 쓴 책의 중국어판 '나는 이렇게 올림픽을 기획했다'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그가 명예회장을 맡고 있는 21세기 한.중교류협회와 중국인민외교학회의 공동 행사였다.
중국에는 아직 그를 기억하고 그를 찾는 인사가 많다. 특히 올림픽과 관련 그에게서 노하우를 배우려고 한다. 중국에서 강연할 때면 "국민이 하나 되어 참여해야 한다"고 비결을 일러준다.
현직 시절 마당발로 통했다. 영어 일어 독일어 등에 자유로와 외국 지인도 많다. 지금도 무지 바쁘다. 약속 시간을 잡는데 2주가 걸렸다. 대학 특강도 다니고 종교 강의도 잦다. 주례도 거절하지 않는다. 주례를 설 때면 믿음과 존경,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되라고 축사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감정과 탐욕, 정욕과 식음, 언어를 절제하라고 일러준다.
현역 시절 자의 아니게 옷을 벗은 일이 많았다. 군문을 떠난 것도 그렇고 그가 책임질 일은 아니었지만 수서사건으로 서울시장을 그만 뒀다. 서경원 의원의 밀입북 사건이 터졌을 땐 부하 직원 대신 안기부장이던 그가 옷을 벗었다.
억울한 감정이 없지 않았지만 "사랑은 받는 것보다 줄 때 행복하다"고 위안을 삼았다. 죽고 사는 일이 종이 한장 차이이던 전쟁터에서 '살아 남아 장군까지 지낸 마당에 무슨 미련이 있는가'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달래기도 했다. 신앙 또한 그의 마음을 다스려 주는 선생이다.
지금 학제로 치면 고교 1학년때 학도병으로 나섰다. 같이 간 동네 친구 다섯중 다시 만난 이가 없다. 육사를 거쳐 소령 중령땐 월남에 파병됐다.
지금도 군 지휘관 시절 같이 근무했던 전우들과 모임을 가지고 먼저 간 동료들을 찾곤 한다. 군인 시절에서부터 '음지에서 땀 흘리는 사람'들을 먼저 생각하는 버릇이 익었다. 약한 부분을 보완해야 안전이 보장된다는 믿음에서다.
지금은 구미로 편입된 인동 출신으로 초등학생때 부모를 따라 부산으로 이주했다. 그역시 과거가 부정되는 세태가 안타깝다. 바로 알고 정확히 판단해야 미래가 보인다고 말하고 싶다.
서영관 논설위원 seo123@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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