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상밖)영천시 고경면 오룡마을

영천에서 포항 쪽으로 국도 28호선을 따라 고경면소재지를 지나면 오룡마을로 접어드는 길이 나온다. 인근에 석산과 레미콘 공장이 들어서면서 생긴 아스팔트 포장길을 따라 굽이진 길을 한참 돌아가면 삼포리와 오룡리의 갈래길.

오룡리로 방향을 잡고 한참을 달렸는데 마을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비포장길이 듬성듬성 섞인 꾸불한 산길을 따라 20여 분을 더 가자 30여 가구가 모여 사는 촌락이 눈에 들어온다.

마을을 둘러싸고 속칭 도덕산과 자옥산·삼척산이 병풍처럼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다. 천장만큼 남은 하늘은 손바닥 2장을 마주대자 그나마 완전히 가려져버렸다.

동구 밖까지 마중을 나온 최봉림(71) 이장은 "여기가 하늘 아래 첫 동네로 불리는 오룡마을입니다. 마을 찾기가 쉽지 않았지요"라며 반긴다.

마을 구판장을 운영하며 이장직을 맡고 있는 최씨 집에 하룻밤 여장을 풀었다. 이방인의 방문 소식에 일찌감치 저녁을 먹은 마을 주민들이 한두 명씩 이장집으로 모여든다. 손에는 감자와 고구마, 도토리묵 등이 들려 있고 '큰그랑'(큰냇물)에서 잡았다는 버들치매운탕도 나왔다.

"도심지에서는 이 맛을 모르지요. 특별하게 대접할 것은 없지만 지난 여름에 잡아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가재도 댓마리 넣어 깊은 맛은 있을 겁니다." 발갛게 익은 통통한 가재에 절로 군침이 돈다.

소주가 한 순배 돌자 저마다 한마디씩 건넨다. "이 마을의 산세가 워낙 깊어 난리도 피해갔어. 6·25 최대 격전지였던 안강 기계가 바로 옆이지만 마을에는 전혀 피해가 없었어."

최남규(75) 씨는 "이 마을 사람들은 해방 3년이 지난 뒤에야 알아차리고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을 정도니 짐작이 가지않느냐"고 반문한다.

한참 이야기를 듣고 있던 김복순(75) 할머니는 "해방 직후 중학교에 다닐 때 친구가 눈앞에서 미군들에게 끌려가 욕을 봤는데 우리 아버지가 오룡골짜기로 들어가면 미국놈들이 못찾는다며 날 이리로 시집을 보냈다"고 했다.

영천과 경주의 경계지점에 있는 오룡마을은 피란지로 정착된 마을이다. 마을의 역사도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임진왜란 때 피란 온 경주 최씨가 마을에 정착하면서 집성촌을 이루었다고만 전해진다. 지금도 마을을 관통하는 신작로를 따라 세상과 통하는 길은 열려있지만 버스는 아침저녁으로 고작 2번만 다닌다.

오룡마을의 겨울 해는 유난히 짧다. 오후 4시만 되면 산그늘이 드리우고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이 동네는 애들이 많아. 지금은 모두 대처로 나가고 없지만. 집마다 5, 6명은 기본이야. 짧은 해에 뭘 하겠어. 부부금실이 그만큼 좋다는 뜻이야." 이장의 너스레로 방안에는 한바탕 웃음꽃이 넘친다.

주민들은 산이 깊어 논이라고는 얼마 없지만 예전부터 임산물에 의한 수입은 짭짤했다고 한다. 지천으로 널린 닥나무로 질 좋은 한지를 만들 수 있었고 양잠기술이 뛰어나 일본군이 군수용으로 가져가기도 했다는 것.

일본군은 곡물과 놋쇠그릇 등 다른 군수용품은 공출해 갔지만 누에를 쳐 만든 비단은 현찰로 사갔다. 강제로 빼앗아 갈 경우 마을사람들이 누에를 치지 않을 것을 염려했기 때문. 덕분에 오룡마을은 양잠으로 유명해졌고 요즘에는 누에가루와 동충하초·뽕잎차 등 새로운 건강식품을 개발, 전국 으뜸 양잠마을로 손꼽히고 있다.

최근에는 질 좋은 마사토에서 나온 삼색감자도 유명세를 타 고소득을 올리고 있고, 산채와 약용식물 등 넘쳐나는 임산물로 영천 일대에서는 부촌으로 통한다.

초저녁부터 재래식 아궁이에 지피기 시작한 군불은 방안을 가마솥으로 만들었다. 밤새 쩔쩔 끓는 방바닥에 몸을 뒤척이다 새벽녘에 방이 식어서야 잠깐 눈을 붙였지만 오전 6시가 채 못 돼 일어나라고 성화다.

삼척산 절터굼에 올라가야 마을 전경이 한눈에 보인다며 기어이 앞장세웠다. 마을 앞 성산지에는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실개천에는 살얼음이 껴 가슴을 더욱 움츠리게 한다.

칼날처럼 생긴 능선을 기다시피 올라가니 금방 등이 축축이 젖어 온다. 7부능선쯤 깎아지른 절벽 사이 약수탕이 보인다. 청석 사이로 배어 나온 약수는 열을 셀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밥공기 한사발 분량의 물이 금방 고인다. 청석 사이로 얼굴을 디밀고 '쭉' 한모금 마시니 알싸한 물맛이 입안을 감돌며 금방 땀이 식는다.

직벽으로 난 산정상이 머리꼭대기에 붙어 죽어도 못 올라가겠노라고 버티자 최 이장은 "그만 내려가자"며 입맛을 쩍 다신다.

내려오는 길에 보호동물인 '삵'이 인기척을 느끼고 쏜살같이 달아난다. "여기는 짐승들이 지천이지요. 어제도 바로 저 앞뜰에 멧돼지 여남은 마리가 저들끼리 놀다 산으로 돌아갔어요."

최 이장은 "옛날에는 범과 늑대들도 심심찮게 출몰했지만 해코지를 당하는 일은 없었다"며 "지금도 멧돼지는 기본이고 노루·멧토끼·꿩·비둘기·너구리·삵 등 그야말로 야생동물원"이라고 했다.

내려오는 길에 어젯밤 만난 최인식(75) 씨가 홍시가 맛있게 익었다며 맛이나 보라고 건넨다. 그는 "우리 마을이 자라등처럼 생겼다해서 옛이름이 오배마을인데 수년 전 성산저수지를 막아 자라가 물을 만나 활개를 치게 된 셈"이라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영천·이채수기자 cslee@msnet.co.kr

사진: 최남구, 남인 형제가 잘 말린 깨를 털기 위해 깻단을 옮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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