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내 국가에서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비밀수용소를 운영하며 인권유린행위를 자행했을 수 있다는 의혹이 확산되면서 유럽대륙과 미국 사이에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유럽 내 CIA 비밀수용소의 존재와 테러용의자 수송기의 유럽 영공 통과에 대해 미국의 해명을 요구하고 진상 조사에 나서는 한편 이 같은 인권유린행위에 개입한 나라는 제재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프랑코 프라티니 EU 법무 담당 집행위원은 28일 EU 회원국 내에서 CIA 비밀수용소가 운영됐다는 사실이 확인될 경우 EU는 해당 회원국의 투표권을 박탈할 것이라고 강경한 어조로 경고했다.
다음주 독일, 루마니아, 우크라이나, 벨기에 EU 본부를 순방하는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이 문제에 대한 유럽 측의 의혹을 해소하고, 비판 여론을 잠재우는 데 적극 나서야 할 상황이다. 앞서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2일 CIA가 동유럽 국가의 비밀수용소에서 테러조직인 알 카에다 핵심요원으로 추정되는 용의자들을 은닉한 채 신문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이어 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 워치'도 다음날인 3일 아프가니스탄에서 체포한 테러용의자들을 폴란드와 루마니아로 수송했다는 것을 시사하는 증거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EU의 해명 요구 및 강경 입장=프라티니 EU 법무 담당 집행위원은 28일 독일 베를린에서 EU 국방전문가 회의 도중 기자들에게 CIA 비밀수용소 보도가 사실로 확인되면 "EU 각료회의에 해당국의 각료회의 내 투표권 정지를 포함하는 심각한 조치들을 제안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투표권 정지 조치는,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존중, 기본적 자유권, 법치라는 원칙에 기반해 EU가 창설됐으며 이러한 원칙들을 되풀이 위반할 경우 제재받을 수 있음을 규정한 EU 조약에 의해 정당화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프라티니 위원은 EU가 미국 정부에 대해 CIA 비밀수용소 파문에 대해 해명할 것을 요구했지만 아직 공식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는 EU의 한 집행위원이 지난 주 워싱턴을 방문해 백악관과 국무부에 CIA가 동유럽 국가에 비밀수용소를 설치, 운영했다는 언론 보도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으나 미국 측은 "사태를 평가할 시간을 달라"며 확실한 답변을 회피했다고 덧붙였다.
비밀수용소 설치는 유럽인권규약에 위반되는 것이며 모든 유럽 국가는 인권규약을 지킬 의무가 있다. 프라티니 위원의 발언은 유럽평의회가 CIA 비밀수용소 파문에 대한 진상 조사를 벌이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이다.
◇유럽 각국 반응=루마니아와 함께 CIA 비밀수용소를 수용한 동유럽 국가로 지목된 폴란드는 자국 영토에 비밀수용소를 허용하지 않았다고 강력히 부인했다. 알렉산드르 크바스니예프스키 대통령은 28일 뉴스채널인 TVN24와의 회견에서 "폴란드 땅에는 그런 종류의 수용소가 없으며, 그런 종류의 죄수들도 없다"고 재차 부인했다.
대통령은 그러나 테러 용의자를 수송하는 CIA 전용기가 폴란드에 비밀리에 착륙했는지를 논평할 수 있는 자리에 있지 않다며 "어떤 비행기가 착륙했는지를 보고받는 대통령은 없다"고 말했다. 프랑스를 방문 중인 프란츠 요제프 융 독일 국방장관은 수감자들이 동유럽의 비밀수용소에서 고문을 받았는지에 대해 독일 정부는 우려하고 있다고 28일 밝혔다.
융 장관은 현재 미국을 방문 중인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 외무장관이 미국정부의 해명을 들을 계획이라며 "문제는 수감자를 이송한 CIA 비행기가 아니라 '고문이 있었는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스위스 외무부는 2003년과 2004년 스위스 영공을 통과하거나 기착한 미국의 특별 전세기 2대에 테러 용의자가 탑승했는지를 묻는 질의서를 미국 정부에 보냈다고 스위스 언론이 27일 보도했다. 이밖에 캐나다도 테러용의자를 태운 것으로 의심되는 CIA 비행기들이 지난 4년 동안 자국 영공을 통과했다는 보도와 관련, 진상을 조사하고 있다고 28일 밝혔다.
◇미국 정부의 대응=미국 국무부는 28일 유럽 내 CIA 비밀수용소 의혹에 대해 "가능한 한 완벽하고 솔직한 태도로 대답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숀 매코맥 국무부 대변인은 5일부터 유럽을 순방하는 라이스 국무장관이 비밀수용소의 보도 내용에 대해 논의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매코맥 대변인은 그러나 비밀수용소의 존재를 확인하지도, 부인하지도 않은 채"우리가 함께 치르는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넓은 맥락에서 대화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며 테러와의 전쟁에서 강력한 조치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워싱턴·바르샤바APAFP연합뉴스
댓글 많은 뉴스
'박정희 기념사업' 조례 폐지안 본회의 부결… 의회 앞에서 찬반 집회도
법원장회의 "법치주의 실현 위해 사법독립 반드시 보장돼야"
李대통령 지지율 50%대로 하락…美 구금 여파?
李대통령 "한국서 가장 힘센 사람 됐다" 이 말에 환호나온 이유
김진태 발언 통제한 李대통령…국힘 "내편 얘기만 듣는 오만·독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