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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 젖은 때가 많은 겨울철

나는 퇴근길에 용의단정이라 쓰인

교문 앞에 걸린 거울이 비친 자리가

사각형 모양으로 말라 있음을 보게 된다

거울은 물상을 여과 없이 비추는 걸로만 알았는데

반사 빛이 젖은 땅을 말려 준 것이다

나에게 거울 같았던 분들이 생각난다

팔 할이 바람이셨던 아버지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 선생님

어머니가 되어 준 셋째 누나

역사 속의 몇몇 위인들

언뜻 언뜻 스치는 삶의 노정에서 만난 사람들…

아! 나는 지금 누구의 거울이 되고 있을까

나를 통해 그들은 자신의 어떤 모습을 보는 것일까

나는 따스한 반사 빛을 발하기나 하는 걸까

거울 속으로 다가오는 저 아이들의 언 손이나마

두 손으로 녹여 주리라고

거울이 말려 준 흙바닥을 쿡쿡 다져 본다

심재방(1949~ ) 거울이 비친 자리

앉았다 떠난 자리는 아름다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앉았다 떠난 자리가 몹시 황폐하고 난잡하여 눈뜨고 보기가 힘든 경우를 종종 대면할 때가 있습니다. 한여름 휴양지에서 특히 그러한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나의 성공, 나의 성장, 나의 모든 성취는 뒤에서 알게 모르게 나를 도와주었던 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세상에 독불장군이란 있을 수가 없지요. 이 시는 교직에 몸을 담고 살아가는 선생님이 쓴 시작품입니다. 교사는 늘 학생들을 가르치고 올바른 길로 이끌어 가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을 돌보고 점검하는 생활이 필요하겠지요. 이 시에 등장하는 거울의 의미는 자못 숙연하기까지 합니다. 우리는 매일 습관처럼 거울을 들여다보지만 우리의 마음까지 비추어보지는 않지요. 그래서 예로부터 역사를 거울에 비유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동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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