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류공고 미술부에 들어가서 그림 그리는 날보다 맞는 날이 더 많고 적성도 안 맞아 몇 개월 다니다가 학교를 때려치우고 부산 보수동 헌책방 골목을 할 일없이 뒤지던 때였다. 지나간 현대문학 잡지를 100원에 2권씩 사곤 했는데 거기 실린 단편 소설 중에 다음과 같은 닭 이야기가 나왔다.
어느 날 닭 우리에 '삐딱한' 닭 한 마리가 들어온다. 닭장 속 왕초에게 아부도 하지 않고 굽실거리지도 않아서 그 패거리들에게 두들겨 맞기도 하고 왕따도 당했는데 이 달구새끼가 밤마다 기상천외한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한때 새였는데 인간에게 길들어져 주는 먹이만 구구하고 먹고선 나는 연습을 안 해서 이렇게 날개가 있어도 못 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날자, 날아보자꾸나' 하고 충동질하며 자기부터 나는 모양새를 잡는데, 정말 제법 나는 것이다. 처음엔 왕초닭을 비롯해 부하 닭들도 '저놈은 또라이 닭이다' 하고 코웃음을 쳤다.
삐딱한 닭이 그렇게 맞고도 밤마다 나는 연습을 하는 걸 보고 한두 마리 닭들이 따라 날기 시작했는데 밤마다 여기저기서 푸드득 푸드득 닭이 나는 소리가 들렸단다. 닭 우리의 모든 닭이 삐딱한 닭의 말과 행동에 동조할 무렵 어느 날 낮에 닭 주인이 닭들을 봤다. 그런데 닭들이 낳으라는 알은 안 까고 꾸벅꾸벅 졸고 있는지라 그 중에 제일 비실비실한 주인공 닭을 '병들었다'하면서 모가지를 비틀어 잡아 버리는 것이다.
조류독감이란 말이 없던 시절이다. 이야기는 대충 이렇게 끝나는데 이 소설의 작가가 나중 모 기관에 끌려가서 '체제비판이다' 하면서 곤욕을 치렀다는 소식을 들었다. 70년대니깐 군사독재정권의 서슬이 시퍼럴 때의 이야긴데 세월은 유수같이 흘러 지금은 대통령을 욕해도 잡아가는 사람이 없다. 이젠 북한 주민의 인권을 생각할 때가 온 것이 아닐까?
닭띠 해가 지나간다. 내년은 병술년, 개띠 해다. 개를 생각하면 보신탕이 떠오른다. 보신탕 하면 황구, 즉 누렁개가 최고고 시쳇말로 똥개라고 부른다. 절에 다니시는 부모님은 먹지 말라고 하는데 객지를 떠도는 예술가는 건강상 보신탕을 먹는다.
여름철에 먹어두면 겨울에 추위를 덜 탄다든가? 내 어릴 적 항구 부둣가에는 야바위꾼들이 설쳤는데 카드 석 장 중 한 장에 둥근 점을 찍어 놓고 이리저리 섞어서 점찍은 카드를 찾으면 판돈의 두 배를 준다고 하면서 어리숙한 촌놈을 꼬드겨 쌈짓돈을 털어먹고 순경이 나타나면 사라지곤 했다.
올해 사이언스 잡지에 실린 과학논문의 사진이 야바위꾼의 카드처럼 섞어서 조작되었다니 이런 걸 두고 개판이라고 하는 것이다. 미국 모 대학 교수에게 필요 이상으로 연구비를 지급했다니 이건 '닭 쫓든 개 지붕 쳐다보기'인가? 각설하고 추운 닭띠 해가 빨리 가고 따스한 개띠 해가 오면 그림 팔아 개처럼 돈 벌어 정승처럼 써 보련다. 그럼 안녕히!!
정태경
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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