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휴대전화가 없다고요?

휴대전화가 없다고요? 늦깎이 유학에서 돌아온 지 서너 해 동안 내가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개인용 휴대전화가 없을 뿐 우리집에는 온 가족이 함께 사용하는 휴대전화가 엄연히 하나 있다. 우리집 휴대전화는 아내가 시장갈 때, 아이들이 소풍갈 때, 그리고 내가 저녁 모임에 갈 때 정도만 사랑받을 뿐이다. 연구실에 가면 개인전화가 있고 아이들 학교가 아파트 단지 내에 있어 휴대전화의 필요성을 특별히 느끼지 못하고 있다. 휴대전화를 사달라고 조르는 중학생 아들, 딸을 설득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주위 사람들을 이해시키기에는 적잖은 내공이 필요했다. 주위 사람들 대부분은 휴대전화 하나로 온 가족이 돌려가며 사용하는 나를 좀 모자란 사람으로 여긴다. 짓궂은 친구들은 아마 바람피울 능력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아니냐고 놀려 댄다. 아내의 친구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그러나 생각해 보시라. 불과 몇 년 전 휴대전화가 없었을 때에는 온 집안이 전화 한 대를 놓고 썼다. 그래서 아들 녀석이 누구와 친한지… 딸아이가 남자친구와 싸웠는지… 가족들은 웬만한 시시콜콜한 것들을 서로 알고 살았다. 하지만 휴대전화가 나타나면서 풍경이 달라졌다. 온 가족의 휴대전화 갖기가 성공적으로 이뤄진 지금의 시대는 서로 알고 지내는 가족 문화가 불가능한 지경에 이른다. 게다가 전화기를 귀에 대고 떠들면 엿듣기라고 하겠지만 문자로 메시지를 교환하는 세태에는 상황파악이 아예 불가능하다. 게다가 휴대전화는 이제 불륜을 가능케 하는 최고의 디지털 디바이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탈리아 최대의 사립탐정 회사 '톰폰지 인베스티게인션스'는 배우자에게 외도가 발각된 사례의 87%가 휴대전화 때문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발표했다고 한 언론은 전한다. 여름 휴가가 끝나는 9, 10월에 이혼이 급증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이 기간 이혼율이 급증하는 것은 가족들과 휴가 중에 은밀한 휴대전화와 문자 메시지를 날리다가 생긴 일이라고 한다.

휴대전화는 이제 모든 것을 바꿔놓고 있다. 빛 바랜 사진이 붙어있는 구겨진 학생수첩은 이제 대학가에서 볼 수 없는 풍경이다. 학생들은 폰카로 강의 노트를 베끼고, 음악을 듣고, TV를 시청하고, 약속을 잡고, 차비를 내고, 은행 업무를 처리한다. 게다가 여차하면 '악플'을 달아 스트레스를 푼다. 자물쇠 기능까지 있어 누가 엿볼 수조차 없다, 괜히 아이들 휴대전화라도 만지작거리다가는 프라이버시도 모르는 무식한 부모로 찍히기 십상이다. 휴대전화는 이제 우리들의 함께하는 공동체 문화, 이른바 'We 문화'를 뿌리째 바꿔놓고 있다.

피터 드러커의 말처럼 휴대전화는 이제 우리가 단절의 시대(The age of discontinuity)에 살아가고 있음을 실감케 해 준다. 우리가 긴장해야 할 이유는 작금의 단절 현상이 거의 낌새도 알아차릴 수 없이 침투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끓는 물에 개구리를 던지면 놀라 펄쩍 뛰어나오는 개구리도, 찬물에 넣은 뒤 시간을 두고 열을 가하면 푹 삶기는 것과 같은 이치다. 휴대전화는 우리 모두를 사적인 영역에 가두며 이른바 공공의 영역을 무장 해제시키고 있다. 공공 공간은 날로 사공간에 먹혀 간다. 위르겐 하버마스는 공공 영역은 사상의 자유로운 교환을 가능케 하여 여론을 형성하는 의의를 가졌으나, 자본주의의 급속한 발달로 공공 영역이 사라지고 있다고 개탄했다. 나는 하버마스의 이 생각을 전 가족 구성원의 휴대전화 갖기가 이뤄진 한국사회에 대입해 보고 싶다. 시시콜콜한 일상사의 공유로 가능했던 가족 구성원 간의 참으로 소중한 가치들이 급속한 디지털화로 인해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은 것이다.

하버마스는 모두가 함께하는 공동체 문화는 삶의 많은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 대의 휴대전화를 온 가족이 함께 사용하는 우리집의 문화로, 작게는 가족공동체의 가치를, 크게는 하버마스적인 공공 영역을 지키고 싶다. 그러나 모두가 나를 수레바퀴에 맞서는 사마귀(당랑거철;螳螂拒轍)쯤으로, 기계문명을 거부하며 기계를 파괴하는 러다이트 운동 (Luddite Movement)의 수호자로, 아니면 애마 로시난테에 올라타 라만차의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어리석은 돈키호테쯤으로 여길까 두렵고 무섭다.

김동률 KDI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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