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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이 넝쿨 기어가는 밤

이쪽 담벼락에서 저쪽 담벼락으로

건너뛰는 도둑고양이

너는 그렇게 온몸으로 다가온다

들어오려는 도둑 막을 수 없듯

네가 들어왔던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발자국을 남기고 간 뒤

애써 쫓지 않아도 너는 달아난다

너는 지금 어느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니

담장이 넝쿨 따라 달팽이 기어가듯

너는 그렇게 왔다 가고

네 그림자 속에는 그리움이 길게 누워 있다

'그림자 속에는' 박지영

사랑은 은밀하게 다가온다. 은밀하면 은밀할수록 사랑은 신비롭고 아름답다. 어느 날, 문득 가슴 속 깊은 곳에 자리 잡는 것이 사랑이다. 쌍방 소통을 꿈꾸지만 온전한 사랑의 모습은 일방적 사랑에서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사랑의 미학은 완성보다 미완성에, 결합보다 결별에 있다. 이루지 못한 사랑은 그리움으로 이어져 가슴 속에 시리도록 아프게 남는다.

사랑은 '담장이 넝쿨 따라 달팽이 기어가듯' 왔다 가고 '네 그림자 속에는 그리움이 길게 누워 있'을 때, 비로소 한 편의 시가 되고 노래가 된다. 비극적 사랑에서 완벽한 아름다움을 보는 것이다. 못다 한 사랑이 우리를 영원히 꿈꾸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구석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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