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 졸업식에 생각하는 봄꽃

졸업 시즌이 돌아왔습니다.

졸업(卒業)의 글 뜻은 어떤 일이나 학업의 과정을 마쳤다(卒)는 뜻이 되지만 인생에 있어서 꿈과 의지가 살아 있는 한 그대로 마침표를 찍고 다 끝나 버리는 일은 없습니다.

새롭게 시작하겠다는 꿈과 의지만 있으면 끝마침은 곧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졸업도 그런 의미로 보면 끝마침이 아닌 내일의 더 높은 배움을 향한 첫 발걸음입니다.

초등학교든 중고교든 대학이든 졸업 식장에는 학업 성적이 조금 더 앞서서 큰 상을 받는 친구도, 수능 점수 같은 평점이 뒤처진 친구도 나란히 함께 자리합니다.

어제까지의 경기에서 기록이 좀 뒤처졌다고 남은 다음 인생의 경기에서도 실패하거나 끝까지 뒷줄에만 선다는 법은 없습니다.봄꽃을 생각해 보노라면 그런 인생의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이제 곧 개나리, 진달래가 맨 먼저 고운 꽃잎을 뽐낼 것입니다.

장미나 아카시아, 라일락은 두어 달 더 뒤처져서야 꽃이 핍니다. 봄꽃을 두고 생각해 봅니다. 일찍 핀 꽃이라고 뒤에 핀 꽃보다 반드시 더 아름다운가, 그리고 늦게 피는 라일락의 향기가 먼저 핀 개나리보다 덜 향기로운가라고. 무엇이든 일찍 앞서는 것만이 성공된 삶을 얻어 내리라는 믿음은 진리가 못 됩니다.

처음 몇 바퀴까지는 뒤처지다 마지막 질주에서 역전승하는 토리노의 쇼트트랙 경기장에서도 그런 평범한 진리를 지켜 보았습니다.

어제 오늘 졸업식장에서 지난날까지의 학업성과가 다소 뒤져 어깨가 처진 친구들을 '위로'나 하려고 꿰맞춘 덕담이 아닙니다. 졸업이라고 하지만 긴 인생의 코스를 두고 보면 고작해야 6분지 1, 대학졸업이라도 4분지 1도 채 못 왔습니다.

끝마침(卒)이 아니라 아직 막 시작하는 스타트라인쯤에 서 있는 것입니다. 더 희망적인 사실은 스포츠와 달리 인생의 경기에서는 사람이 스스로 꿈을 포기하지 않는 한 패자부활전은 언제까지고 계속 유효하다는 것입니다. 기회는 영원한데 인생의 4분지 1도 채 못 간 졸업식에서 꿈을 포기하거나 지레 좌절하지 말자는 얘기입니다. 더구나 21세기의 세계 무대는 반짝 일찍 피었다가 시드는 기억력 의존형의 '나팔꽃 인재'는 원하지 않습니다. 다 그렇지는 않지만 우리의 교육 현실은 학업의 평가에서 대체로 시험지에 써 내는 정답의 총량 대비로 우열이나 서열을 가려내고 4지선다식의 기억력 중심으로 능력이 평가되는 경향이 없지않습니다.

기억력 의존 중심의 능력 평가는 '기억력 좋은 자=능력있는 자'라는 그릇된 등식을 만들어 낼 위험이 있습니다.

800여 년 전에 21세기 의식으로 살다 갔다는 칭기즈칸의 열린 사고, 스피디한 개척 의식은 기억력 의존형 인재에게서는 나올 수 없는 창조적 에너지였습니다. 칭기즈칸이 기억력 의존형 인물이었다면 그는 몽골 초원의 옛날식 말먹이 기술이나 외고 말 타는 재주나 멋 부리다 일생을 허비했을지 모릅니다. 따라서 기억력 중심으로 평가된 졸업식에서의 앞서고 뒤처짐에 풀이 죽어 인생의 패자부활전을 포기하거나 스스로의 꿈과 의지를 쉽게 내던지고 좌절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세계의 첨단기업들도 창조적이고 의지적인 인재들을 골라서 데려갑니다. 세계 최고 기업 도요타 회사는 일찍 동경대학에는 못 들어갔어도 창조적 능력이 있는 2류 대학 출신을 동경대 출신(16%)보다 5배나 더 많이(83.6%) 채용했습니다. 혼다 역시 동경대생은 고작 5%, 기타 대학(78%)과 고교 출신(7.8%)을 더 많이 뽑아 씁니다.물론 일찍 꽃피고도 오랫동안 계속 아름다움과 향기를 뿜는 인재도 많습니다.

졸업 시즌을 맞아 일찍 꽃을 피우지 못해 앞자리에 나서지 못한 뒷줄의 졸업생 친구들에게 '일찍 핀 꽃만이 더 아름다운 것이냐'는 화두를 건네는 것은 오늘 지면에서나마 그런 친구들의 친구가 되고 싶은 마음에서입니다.

다시 한번 졸업 축하합니다. 다 같이 파이팅!

金 廷 吉 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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