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가에서-히틀러의 월드컵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재미있는 설전을 벌였다. 서로 히틀러의 고향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찌되었건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인물을, 또 당시에는 목을 매고 연고를 주장하던 이들이 히틀러의 흔적을 도려내려 싸움까지 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가난한 미술 학도, 내성적이고 예민한 청년. 그의 어린 시절을 함께한 사람들은 도무지 나찌즘과 그를 연결하지 못한다. 그 에너지의 원천은 무엇일까?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예술적 재능을 타고난 히틀러는 줄곧 화가로서 성공을 꿈꾸었다. 하지만 그의 재능은 파리와 빈에서 빛을 발할 정도는 되지 못했다. 거의 굶어가면서 꿈을 위해 헌신했지만 아무도 그를 주목 하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큰 위안이 되었던 첫사랑도 부모님의 매몰찬 반대와 경멸로 산산조각 나고 만다. 정신병적 상황에 이른 히틀러는 사람을 피하고 스스로를 심각하게 학대 한다. 끝없는 나락에서 그가 선택한 탈출구는 군대였다. 먹고 사는 것을 해결하기 위한 궁여지책이었다. 하지만 역사는 그곳에서 일어나기 시작한다. 혹자는 그를 탁월한 전략가, 카리스마 넘치는 전쟁영웅이라 하지만 그가 군에서 한 일은 자전거를 타고 전방과 후방부대 사이의 편지를 배달하는 업무였다. 군복을 입고 총보다는 편지를 더 많이 만지는 군인이었다. 놀라운 것은 그의 예술적 재능이 이곳에서 빛을 발한다는 것이다. 그는 편지와 함께 전황을 꾸며대고 자신의 영웅담까지 만들어 넣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그는 직업군인이 되고 전쟁이라는 캔버스 위에 자신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화가출신의 가장 위대한 독재자 . 그의 면모는 독특한 연설에서, 아직까지도 가장 아름다운 군복중의 하나인 나찌 군복에서, 성배를 찾는 특별부대를 편성한 것에서, 신화연구부대를 따로 둔 것 등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독일국민을 하나로 묶는데 성공한다. 세계를 상대로 그 에너지를 분출한다. 잘못된 길이었지만 독일국민은 그때까지의 모든 사회역사적 스트레스를 날려 버린 것이다.

다가오는 6월 월드컵이 시작된다. 개인적 한과 응어리를 원천으로 하여 세계를 농단한 히틀러의 독일에서 열린다. 반만년을 한으로 점철한 우리나라도 독일에 간다. 그 사무친 한을 2002년 거리, 700만의 붉은 악마로 풀어내기 시작한, 생명과 평화의 멋진 나라 대한민국이 독일에 간다.

황보진호 하늘북커뮤니케이션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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