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필리핀 민주주의는 가문 싸움…국민은 구경꾼"

필리핀 영화 제작자들은 미국의 카우보이와인디언 영화를 만들고, 라디오 방송에서 하루 종일 흘러나오는 음악은 미국 음악이고, 필리핀인들이 즐기는 스포츠는 축구가 아니라 농구이며, 퇴근 후 서둘러 집으로돌아가 미국의 아마추어 가수경연인 '아메리칸 아이돌'을 시청한다. 게다가 미국이 이식한 민주주의 정치체제까지 갖춰 필리핀의 외양은 미국 판박이이다.

그런데도 '피플 파워(민중의 힘)'로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를 축출한지 20 년이 지난 시점까지 미국식 민주주의가 성공하지 못하고 "비틀대는" 이유에 대해, 워싱턴 포스트는 필리핀 특정 지방을 왕조처럼 지배하는 호족 가문에서 찾았다.

미국이 1898년 스페인으로부터 빼앗은 필리핀을 40년간 식민지로 지배할 때 미국식 정치 제도를 겉만 이식한 게 왕조적 가문들의 지배권을 더욱 굳히는 결과를 빚었고, 그 결과 필리핀의 민주주의는 국민의 것이 아니라 "아키노, 아로요, 마르코스같은 가문들간 인정사정없는 경쟁 이상의 것은 아니게 됐다"는 것.

정당은 무의미한 존재이고, 대부분의 일반 국민은 이 싸움의 "구경꾼으로 전락" 했다고 신문은 정치분석가들의 말을 전했다.

그에 따라 필리핀 국내외의 투자자는 투자를 기피하고, 지도자라는 사람들은 장기적인 국가 발전 전략을 추구하기보다 자신들의 생존 전략 찾기에 급급하게 됐다.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딸로 3선 국회의원인 이미 마르코스도 "우리 정치체제는미국 복사판이지만 실제 운영은 그렇지 않다"며 필리핀 정치의 특성을 "친족 혈연관계"라고 말했다.

미국이 식민지 시대 이식한 민주주의는 처음엔 교육받고 재산이 있는 층에만 투표권을 부여했고, 각 지방 권력을 독점했던 각 가문은 이 권리를 통해 나라 돈을 사용, 자신들의 권력을 강화했으며, 공직은 가문의 상속물이 되고 말았다.

군중들이 변화를 요구하며 자꾸 거리로 뛰어나가고, 5년전에도 '피플 파워'가에스트라다 대통령을 쫓아내는 일이 반복되는 것은 이런 체제하에서 보통 사람들이선거를 통해 자신들의 의사를 반영할 길이 막혔기 때문이라고 신문은 지적했다.

현재 필리핀 국회는 왕조적 가문 출신 의원들이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다.

신문은 독재자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묘지가 있는 마르코스 고향 르포를 통해 " 아무도 감히 마르코스 가문에 도전하지 못하고" 모든 생각이 "마르코스, 마르코스, 마르코스에 갇혀있는" 필리핀의 풀뿌리 민주주의의 현실을 전하며 "정치인들이 자신들 배불릴 생각만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밖으로 뛰쳐나갈 수 밖에 없다. 우리는간신히 연명하고 있을 뿐"이라는 한 해외 취업희망자의 말로 기사를 맺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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