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자 노트-출사표와 줄사표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입니다."

5·31 지방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대구시 간부공무원들이 잇따라 사표를 내는 데 대해 대구시 안팎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임명장을 받은 지 한 달여 밖에 안된 고위 공무원이 구청장에 출마하기 위해 훌쩍 사표를 내는 등 3급 이상 공무원 3명이 최근 기초단체장 선거에 나서기 위해 줄줄이 옷을 벗었다.

공무원의 선거 출마로 인한 사표 제출 때문에 인사를 자주 하다보니 "임명장에 잉크도 마르지 않았는데 또 인사를 하느냐" "최단명 기록을 경신했다" "업무보고만 달랑 받고 사표를 던지다니..." 등 볼멘 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 같은 부정적 여론과 함께 공직사회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란 보다 근본적인 우려도 없지 않다. 한 고위 공무원은 "구청장 자리는 정책을 결정하기보단 행정서비스를 하는 데 불과하다"며 "20~30년간 공직생활을 하면서 쌓아온 노하우를 제대로 활용하지도 못한채 선거바람에 휩쓸려 안타깝다"고 했다. 또 "선거에 출마하라고 (인사권자가) 중요 보직을 거치게 했다는 인상도 짙다"고 꼬집었다.

나아가 '풀뿌리 민주주의'의 위축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특정 정당의 공천을 받으면 당선이 보장(?)되고, 국회의원이 공천권을 휘두르는 상황에서 국회의원으로부터 '부름'을 받아 선거에 나선 공무원 출신 기초단체장들이 과연 제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냐는 우려에서다. 한 공무원은 "그렇게 당선된 기초단체장은 국회의원의 '수족'이 될 수밖에 없지 않느냐"며 "설령 제목소리를 내면 잠재적 경쟁자로 여긴 국회의원에게 결국'팽'당할 것"이라고 했다.

"지역발전을 위해 출사표를 던지지로 했다"는 표현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촉(蜀)의 제갈량이 위(魏)나라 토벌에 나서면서 황제에게 올린 출사표엔 죽음을 앞두고 국가의 장래를 걱정하는 제갈량의 충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고, 실제 그는 전쟁 중에 죽음을 맞았다.

공직을 던져버리고 기초단체장이란 선출직의 길로 들어선 이들에게 출사표란 단어는 가당찮다는 게 비판의 요지다. 공천이란 줄을 달아 사표를 냈고, 줄줄이 사표를 냈다는 의미에서 그저'줄사표'란 말이 딱 들어맞는다는 얘기다.

이대현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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