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청량사에 들어서면 바람 한 점 없는 날에도 청아한 풍경소리가 마음을 사로잡는다. 범종각 아래의 안심당(安心堂)에 들어선 찻집 이름 때문이다. 찻집은 주지인 지현스님이 절을 찾아온 이들의 쉼터로 지었다. 색다른 화두(話頭)가 경내에 들어서는 이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킨다. 바람은 뭐고 소리는 또 뭔가.
이 찻집 이름은 범종루를 지나 계단을 올라 맨 꼭대기 축대 위에 들어앉은 유리보전에 닿을 때까지 머릿속을 뱅뱅 돈다. 그러다 바위봉우리에 둘러싸여 아늑한 청량사를 둘러보고 나서야 잊는다. 바위봉우리는 청량사의 본전인 유리보전을 호위하는 장군들인양 우뚝하다. 그 암벽아래 용케 터를 잡고 법당이 들어섰다. 이 법당 안에 특이한 부처가 모셔져있다. 아픈 사람을 치료한다는 약사여래불. 우리나라에선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종이를 녹여 만든 지불(紙佛)이다. 금박을 입혀 겉모습만으로는 알아채지 못한다. 유리보전의 현판글씨는 공민왕의 친필이다.
유리보전에서 돌아선다. 경관이 보통이 아니다. 산 속에 포근하게 안긴 청량사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다. 왼쪽의 3층탑처럼 생긴 봉우리가 금탑봉이다. 가을이면 단풍과 노을빛이 비쳐 황금빛으로 물든다는 봉우리. 이 봉우리 아래쪽에 응진전이 있다. 원효대사가 수도했고 고려말엔 노국공주가 기도했던 곳이다. 원나라 왕족이었던 노국공주는 공민왕과 결혼한 뒤 홍건적 침입 때 청량사로 피신해 이곳에 머물렀다.
응진전은 청량사에서 20분 거리. 중간에 퇴계선생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오산당이 있다. 이곳은 퇴계선생이 숙부인 송재 이우 선생으로부터 글을 배웠던 곳이다. 김생굴도 들러볼 만한 곳. 오산당에서 가깝다. 신라 명필 김생이 이곳에서 10년 동안 글씨를 익혔다.
오산당 바로 옆에도 찻집이 하나 있다. '산꾼의 집'. 아홉가지 약초를 넣은 향긋한 차를 무료로 내주는 산꾼은 이대실(62)씨다. 가을단풍철 휴일이면 하루에 무료약차가 2천여잔이나 나간다. 영양에서 예식장을 하던 산악인 이씨는 1991년 홀로 청량산으로 들어왔다. 이곳에서 그는 달마도를 그리고 대금도 불고 도자기를 빚고 작은 목공예 인형을 만든다. 이것저것 한다고 하나라도 허투루 하는 게 없다. 모두가 수준급. 산꾼의 집은 산악구조대 본부이기도 하다. 당연히 청량산에서 조단당한 등산객을 구조하는 일도 그의 몫이다.
청량사에서 응진전을 오가는 가벼운 산책길이 아쉽다면 청량산 등반도 해볼 만하다. 우뚝 솟은 바위봉우리와 그 바위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 그 사이로 난 등반로가 매력적이다. 응진전-금탑봉-경일봉-보살봉-의상봉(청량산의 주봉)을 거쳐 돌아오면 4시간 30분에서 5시간 정도 걸린다. 쉬는 포인트는 응진전 위에 있는 어풍대. 절벽 위의 평지로 아래는 천길 낭떠러지다. 앞쪽으로 청량산의 바위봉우리들과 그 아래 자리잡은 청량사가 한눈에 들어온다. 하산은 다시 청량사 쪽이다.
터벅터벅. 침목으로 길을 내려오다 은은한 풍경소리를 듣는다. 찻집이 있는 안심당 앞이다. 문득 다시 경내에 들어설 때 느꼈던 화두에 빠져든다.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글.박운석기자 dolbbi@msnet.co.kr
사진.정재호편집위원 newj@msnet.co.kr
사진 : (위)우뚝 솟은 바위봉우리 사이에 포근하게 들어앉은 청량사. (가운데)범종각 옆에 있는 우물. 특이하게 천정에 있는 대나무관을 타고 물이 흘러내린다. (아래)청량사 옆 '산꾼의 집' 이대실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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