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외로움이 더 무서워요"…홀로 대장암 투병 이순영씨

병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달이 저(이순영·가명·54·여)처럼 참 외로워 보이네요. 주변 환자들을 돌아보면 더욱 제 신세가 처량해집니다. 그들은 찾아와 주는 가족들이 있지만 저는 혼자 투병생활을 해야 합니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지난해 어머니마저 떠나보냈으니까요. 혼자 지내는 사람은 몸이 아프면 더욱 외로움을 탄다지요? 대장암으로 병실에 누워 있는 지금, 그 말이 가슴 속에 와 닿습니다.

제 고향은 충남. 산골에 사시던 부모님은 가난한 소작농이었습니다. 남의 집 일을 거들어주고 겨우 입에 풀칠하는 형편이었지요. 부모님 일을 거드느라 학교도 제대로 다닐 수 없었습니다. 초등학교 문턱을 겨우 밟아봤을 뿐, 졸업장을 손에 쥐진 못했어요. 외동딸 학교 보낼 여력조차 없으셨던 거지요.

10대 후반 우리 세 식구는 고향을 떠나 대구로 흘러들어왔습니다. 아버지는 가계에 보탬이 되질 못했어요. 밖으로만 나다니시고 술병을 옆에 끼고 살다시피 하셨습니다. 그 탓에 일찍 돌아가셨지요.

생계를 꾸리는 일은 온전히 제 몫이었습니다. 다리를 심하게 저시는 어머니는 몸을 가누기도 벅찬 상태였으니까요. 저는 이 집, 저 집 다니며 파출부 일을 했습니다. 배운 것 없고 어리숙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것뿐이었으니까요.

파출부로 일하던 집 벽에 가족사진, 결혼사진이 걸려 있는 걸 보면서 속으로 많이도 울었습니다. 저도 '나도 남들처럼 가정을 꾸며 아들, 딸 낳고 오순도순 살고 싶다'는 꿈이 있었어요. 하지만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처지에 몸이 아픈 어머니까지 딸린 저를 어느 남자가 반겨주겠습니까. 어머니는 늘 혼자 사는 저를 안타까워하시면서 "내가 빨리 죽어야지"라고 말씀하셨지만 저는 아무렇지 않다며 어머니를 달래곤 했지요.

그러시던 어머니가 지난해 말 저만 남겨두고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하나 있는 자식, 가정을 꾸미는 것도 못 보신 채로요. 북구 산격동 작은 단칸방에는 어머니의 체취만 남았을 뿐,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었습니다. '나마저 숨이 끊어지면 누가 부모님 영전에 물이라도 한 대접 떠 줄까' 하는 생각에 서글픔이 밀려왔어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제 몸에도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40여 년에 걸친 파출부 생활로 관절염을 얻었지만 그 고통은 약과였어요. 배에 가스가 차 임산부처럼 부풀어 오르고 숨을 제대로 쉴 수 없는 등 참기 힘든 아픔이 계속됐습니다. 지난 2월 초 병원을 찾았더니 대장암이라는 진단을 내리더군요.

병원에선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지만 '아프지 않다'고 우겨 10여 일 만에 병원 문을 나섰습니다. 병원비를 댈 길이 없었으니까요. 밀린 병원비를 내기 위해 사채(160만 원)까지 빌려 써야 했습니다. 피붙이 하나 없는 제게 돈을 빌려주는 사람은 없었지요. 아무리 힘들어도 돈을 빌려본 적이 없는 저였지만 막다른 골목에 몰리니 어쩔 수 없었습니다.

병을 숨기려 한 제가 미련했던 걸까요. 한 달도 채 못 버티고 지난달 말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와야 했습니다. 대장암 수술비만 500만 원. 어떻게든 혼자 해결해보려 했는데 이젠 힘에 부치네요.

이순영 씨가 누워있는 침대를 찾는 이는 의사와 간호사뿐. 같은 병실을 쓰는 환자를 찾는 가족들을 보는 이씨의 눈엔 부러움이 가득하다. 이씨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 속절없이 흐르는 눈물을 감춘다.

"병원비 생각만 하면 앞이 캄캄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의지할 곳이 없다는 것이 너무 무서워요. 어머니 손을 꼭 잡으면 두려움은 떨쳐 버릴 수 있을 텐데…. 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어요."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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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대장암으로 투병 중인 이순영(가명) 씨는 옆을 지켜줄 피붙이 하나 없다는 사실이 서글프다. 가난했던 지난 세월, 열심히 살았건만 이씨에게 남은 것은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뿐이다. 이상철기자 finder@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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