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증을 호소하는 40대 부인이 병원을 찾아았다. 짙은 화장으로 가린 눈두덩의 시퍼런 멍에 대해서는 잠이 모자라서 넘어진 상처라고 말했다. 심상챦은 분위기가 느껴지는 부인에게 남편에 대해 물으니 "그냥, 좀, 성격이 안 맞아요"라며 남편 본심은 착한데 한번씩 성질을 이기지 못한다고 두둔한다. 남편의 손찌검에 대해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그제서야 남편에게는 비밀로 해달라고 애원하며 남편의 구타 사실을 털어 놓았다. 만성적으로 맞으면서 살아온 부인은 '남편은 스트레스가 많아서 그럴 수 있다, 나를 너무 사랑하니까 때린다, 나는 경제력이 없으니까 남편을 벗어날 수는 없고 조심만 하면 된다'는 잘못된 고정 관념까지 가지게 됐다.
우리나라는 세계 4위의 여성 평등 국가라지만 왠지 요원하게 들린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다, 남의 가정일에 참견하지 말라'는 식의 가정폭력에 관용적인 사회분위기가 바뀌지 않는 한 아내구타는 숨겨진 범죄로 남아있을 것이다.
영화 '빈집'에는 매 맞는 아내가 나온다. 얼굴에 피멍이 든 가녀린 여자가 대궐같은 집에 혼자 앉아있다. 빈집 만을 찾아다니며 하루살이 삶을 사는 주인공 태석이 집안에 침입해도 여자는 대항할 태세도 도망갈 생각도 하지 않는다. 철저한 절망감에 빠진 여자는 맞아 죽을 때까지 이 집에서 살 수 밖에 없다는 체념 속에 갇혀 있다. 구타로 길들어진 아내는 완전히 노예화되어 있었다. 아내역을 맡은 배우 이승연은 '구타당하는 아내 증후군(battered wife syndrome)'의 처연한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다.
수시로 전화를 걸어 아내의 행동을 확인하는 남편은 아내가 자기 소유물인양 병적인 소유욕을 보인다. 왜 빨리 전화를 받지 않느냐, 전화받는 태도가 왜 그러냐는 등 시비부터 건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갑자기 집안에 들이닥친다. 아내의 기분과 상관없이 성적 욕망을 채우려고 달려든다. 뿌리치는 아내의 뺨을 때리며 왜 자기를 무시하냐고 욕설을 한다. 잠시 후 장모님께 용돈을 많이 송금했다며 아내를 달랜다. 남편은 때리고 나서 잘해주고 또 때리고 달래는 행동을 반복하는 지킬과 하이드 게임으로 아내를 길들여왔다.
폭력 남편은 아내가 맞을 짓을 해서 때린다고 한다. 돈 벌기가 얼마나 어렵고 사회생활로 스트레스가 많이 쌓이는데 남편 기분 하나 맞추지 못한다고 폭력을 정당화시킨다. 알코올과 관련된 가정폭력은 더욱 심각하다. 술이 과해서 손찌검을 했다고 하지만 술을 마셨기 때문에 때리는 것이 아니라 때리기 위해 작정하고 술을 마신다. 자녀들 앞에서 때리거나 구타 후 공포에 질린 아내에게 성행위를 강요한다.
논리적으로 모순되는 두 가지 심리를 동시에 가지고 있지만 본인은 어떤 갈등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를 정신의학에서는 '이론불통(理論不通)의 방'을 가졌다고 한다. 대외적으로 인권운동가로 알려진 남편이 가정에서는 아내를 구타하고 방치하는 경우가 그렇고, 도덕성 있고 신망있는 정치인이 재벌에 대한 증오심을 갖고 있으면서 그들의 골프접대를 즐긴 뒤 어쩔 수 없었다고 둘러대거나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여기에 속한다. 자기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의 티를 들추어내기 좋아하는 논리불통의 방을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다. 가정폭력의 마인드맵을 그리다 보면 폭력 남편이나 권력가나 원인적으로 대동소이한 사람들이다.
김성미 (마음과마음정신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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