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박승우 作 '봄이 없다'

봄이 없다

박승우

이름도 고운 목련아파트,

13평 임대 아파트에

임대된 봄이 고개를 숙이고 입주한다.

오후 세 시의 아파트 놀이터,

아이들은 미끄럼틀에서 자꾸만 미끄러지고

공사판에 나가는 김씨 아저씨

(오늘도 공치는 날일까?)

쓰레기 수거함에 빈 소주병 하나 던져 넣고

비틀거리는 시간을 시소에 얹어본다

덜컹, 균형이 잡히지 않는다.

아파트 담벼락,

누군가 걸어 놓은 유행가 한 소절

(봄날은 간다)

떨어질 듯 위태롭다.

이름도 고운 목련아파트,

목련 가지에 불안하게 걸렸던 봄이

똑, 떨어지고 있다.

봄은 환하다. '13평 임대 아파트'에도 봄 햇살은 환하다. 그 환한 햇살에 비치는 임대 아파트의 풍경에는 그러나 봄(희망)은 없다. 무료함과 무력감만이 가득하다. '오늘도 공치는' 김씨 아저씨는 '비틀거리는 시간을 시소에 얹어' 하루를 보낸다. '김씨 아저씨'에게는 '봄날은 가'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봄날은 없다'. 우리 시대 '김씨 아저씨'들이 임대해 사는 '이름도 고운 목련 아파트'의 광경을 봄 햇살은 유난히 환하게 드러낸다.

이 봄, 소외된 삶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담담하게 그러나 매섭게 촉구하고 있는 시다.

구석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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