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자, 물체주머니, 실내화, 표준전과, 쫀디기…. 유년시절 초등학교 담장을 사이에 두고 문방구 주인과 군것질거리나 미처 잊어버린 준비물을 거래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희한하게도 문방구 주인은 몇 학년 몇 반 준비물이 뭔지 훤히 알고 있었다. 요즘은? 학교 앞 문방구에서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 아이들 트렌드 다 있다
"공책이나 연필은 더이상 팔리지 않지만 이곳만큼 아이들의 유행에 민감한 곳이 없습니다." 대구시 서구 한 초등학교 앞의 문방구 주인은 최소한 이틀에 한 개꼴로 신제품이 들어온다고 했다. 한 달이면 20종이 넘는 과자, 장난감 등의 신제품이 쏟아지는 셈. 그는 "서울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는 '효리 양말'도 곧 대구로 내려올 것"이라고 말했다.
대표적인 트렌드는 어른 따라하기. 한 문구점 업주는 "장난감 화장품이나 액세서리류가 여자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립스틱 모양을 한 화장품(립글로즈)에서부터 매니큐어, 동방신기 목걸이, 작은 시계가 박힌 커플링, 4천 원짜리 MP3P 모양을 본뜬 라디오까지 어른들을 닮고픈 욕구가 묻어 있다.
한 문구점 여주인은 "초등학교 2, 3학년짜리 아이들이 "세이(클럽)에서 만나자", "스트레스 받아 죽겠다"고 말하면 깜짝깜짝 놀란다"며 "아이들의 유행을 따라잡기 위해 방송이나 잡지 보기를 빼놓지 않는다"고 말했다.
◆ 문구용품이 안 팔린다.
"올해 신학기에는 전과 한 권 못 팔았습니다. 요즘 누가 문방구에서 책을 사기나 합니까."
15일 오후 대구시 남구 대명동 ㄷ초등학교 앞 문방구. 40년째 문방구를 운영하고 있는 주인 서하진(64) 씨는 책장 아랫줄에 비스듬히 꽂힌 전과를 가리키고는 한숨을 쉬었다. "신학기에 전과만 200~300권을 팔던 시절이 있었다"는 그는 문방구는 사양산업이라고 말했다. 10평 남짓한 그의 가게안 물건 중 3분의 2가 먼지 쌓인 재고. 그는 노트, 가방, 색종이, 연필 등을 찾는 아이들이 더 이상 없다고 했다.
문구도매유통업체에 따르면 현재 대구지역에서 영업중인 문방구는 3천여 곳. 10년 전에 비해 1천500여 곳이 줄어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칠성시장에서 문구도매업체를 운영하는 김호성 씨는 "대형 문구점을 제외하고는 과자류나 잡화, 팬시용품 등을 파는 가게로 변하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 여전한 아이들의 놀이터
학교 앞 문구점은 초등학생들에게 여전히 놀이터였다. 달성군의 한 초등학교 앞 문구점. 입구 한 쪽에 늘어선 미니 오락기 앞에 아이들이 쪼그리고 앉아 100원짜리 오락에 열중이었다. 줄을 서고 기다렸다 자기 순서가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뽑기로 물총이 걸린 아이는 친구에게 상품을 자랑하면서 어깨를 으쓱댔다. 이곳 문구점 주인은 "요즘 유행하는 물건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가 하면 공부, 친구 사귀기 등 담임 선생님에게도 못할 고민을 털어놓곤 한다"면서 "요즘에는 학원에 가지 않는 아이들 대부분이 이 곳으로 온다"고 말했다.
대구시 남구의 다른 학교 앞 문방구 업주는 "예전에는 모르는 숙제가 있으면 문방구에 들러 물어보기도 했다"면서 "문방구가 어린 시절의 추억을 간직한 공간으로 남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정재호 편집위원 new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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