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절터, 그 아름다운 만행

이지누 글·사진/ 도서출판 호미

텅 빈 절터에서 인적없는 그 곳의 쓸쓸함에 사로잡혔다. 새벽부터 밤이 이슥하도록, 더러는 밤을 지새면서 한 곳에 머물곤 했다. 절터의 무엇이 그토록 지은이를 붙들어맨 것일까. 그것은 일순간 펼쳐졌다가 사라지곤 하는 절터만의 아름다운 풍경이 그 하나일 것이다.

지은이가 그랬듯이 그 풍경은 한 곳에 수십 차례 걸음하며 하루종일 진득하게 한자리에서 기다리지 않으면 결코 볼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어쩌면 그것은 지은이 이지누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아름다움일지도 모른다.

'이지누의 절터 톺아보기'란 부제를 단 이 책은 이름 그대로 잔폐(殘廢)의 아름다움만 남은 절터를 성심을 다해 샅샅이 더듬어 본 기록이다. 스님들의 조용한 안행의 걸음 소리도 사라진, 적막함뿐인 절터가 무엇보다 사색의 공간으로 더없이 맞춤하였을 터.

'이지누의 절터 톺아보기'는 자기 자신을 바로 보고 자유로워지려는 구도의 행각이다. 자연히 절터에서의 그의 걸음은 사색의 공간으로 채워진 만행이 되었고, 그만큼의 여유와 자유로움으로 밝아진 눈으로 남들이 보지 못한 절터의 아름다움을 매번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절터에서의 만행을 통한 자기수행과 사유의 과정을 가감없이 기록하고 카메라에 담아 묶은 이 책은 이지누의 첫 번째 결실로 '강원도·경상도'편이다. 앞으로 '경기도·충청도·전라도'편과 '경주'편도 잇따라 나올 예정.

이지누가 폐사(廢寺)에 관심을 갖고 그 매력에 빠져든 것은 1989년부터 3년 사이 우리나라 선종사상의 핵심인 구산선문 답사를 통해서였다. 그러다 2004년 가을부터는 절터 답사가 구도행이 되어버렸다.

매번 홀로 걸음하여 긴 시간 명상과 사색에 젖어 머물곤 하던 절터는 그에게 '독락(獨樂)의 선방(禪房)'이었다. 절터로 향할 때마다 그의 가방에는 불경과 함께 노자가 들어 있었다. 게다가 사라진 절집의 역사를 되짚어 가는 과정에 그 절집에 머물렀던 선승들의 비문(碑文)은 물론 옛 선비들이 그 곳을 찾아 남겼던 기문(記文)이나 시를 샅샅이 찾아 음미했다.

그런 인문학적 지식을 토대로 자신의 상상력과 아련한 그리움을 동원해 빈 절터에다 그 절집의 사라진 과거의 영욕을 되살려내곤 했다. 이 책은 그래서 불교사나 미술사를 포함하고 있지만, 그보다는 중년에 들어선 지은이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돌아보고 그를 통해 새로운 자유를 얻으려는 애타는 몸짓이 고스란히 드러난 구도기이다.

솔직한 심정을 아름다운 문학적 표현으로 승화시킨 흔치 않은 기행문이다. 특히 튼실한 인문학적 토대 위에서 이루어진 깊은 철학적 사유가 돋보이는 책으로, 새로운 차원의 절터 답사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더불어 이 책에 담긴 218점의 천연색 사진 또한 오랜 기다림과 깨달음을 좇는 구도의 마음으로 담아낸 것들이니 그 아름다움이야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조향래기자 bulsaj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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