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 DJ가 받은 2통의 편지

내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영남대학교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받는다.

남북한 교류와 평화를 위한 노력을 높이 평가한다는 취지도 있지만 영'호남 화합을 다지는 의미로 이해하는 견해도 없지 않다.

명예 학위를 주는 속뜻이 무엇이건, 누구에게 주든 그 대학의 고유 권한이요, 판단의 자유다. 반대로 남북 교류, 평화에 대한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공로가 명예 박사 학위를 줄 만큼 있었는지 없었는지에 대한 평가에서 대학 측과 다른 견해를 가진 쪽이 있다면 그 또한 판단의 자유다. 대학으로서는 DJ라는 정치인에게 명예 학위를 줌으로써 남북 문제에 대한 긍정적이고 진전된 의미 부여를 해 보자는 좋은 뜻이 있었을 것이다.

반대로 학위 수여 소식이 나가자마자 과연 DJ라는 인물이 지역 대학의 명예 학위를 받을 만큼 존경받을 명예로운 지도자인가라는 비판을 쏟아낸 일부 네티즌들의 부정적 반론은 DJ의 그늘 쪽을 보는 견해일 것이다. 학위 주겠다고 불러서 온 DJ 측으로서는 그런 상반된 반응과 견해에 대해 언짢은 심사를 가졌을지도 모른다.

학위를 주는 대학 측으로서도 민망하고 곤혹스러운 노릇이다. DJ의 명예 학위 자격 유무를 떠나 굳이 한 인물의 그늘만을 꼬집어 내 시비를 일으키는 것은 학향(學鄕) 도시의 손님맞이의 예(禮)가 아니다.

그가 지역 정서에 달갑지 않은 인물이라 하더라도 우리 쪽이 잔칫상을 차리고 모신 마당이기 때문이다.

물론 역사를 움직인 지도자들 중에는 정직보다는 술책과 거짓에 능란한 위선적 이면을 지닌 인물들이 많았다.

정치를 뜻하는 폴리틱(politic)이란 말도 '책략적인' '교활한'의 의미를 함께 갖고 있듯이 아무리 위대한 인물이라도 가까이서 뒷면을 보면 거짓과 약점으로 뭉쳐진 위선자인 경우가 많다.

간디도 루스벨트도 시저도 케네디도 모택동도 그늘만 본다면 거짓 위선자들이거나 권력을 쥔 바람둥이 건달 수준이었다.

DJ에게도 명예 박사가 되기엔 어울리지 않을 그늘은 있을 수 있다. 작은 예를 들면 약속을 지키지 않은 식언(食言) 같은 것이다.

학위를 받기 전날 DJ는 박정희 전 대통령 고향 도시의 시장으로부터 공개 편지 1통을 받았다. 김관용 구미 시장이 DJ의 명박 학위 수여에 축하의 예를 갖추며 보낸 정중하고도 뼈 있는 편짓글의 내용은 이런 내용이었다.

'DJ님이 재임 중에 도와주기로 한 박정희 기념관 건립이 성사될 수 있도록 끝까지 약속대로 도와주시면 고맙겠다.'

박 정권으로부터 정치적 박해를 받았던 인물이 스스로 정적의 기념관 건립을 돕겠다고 약속함으로써 가슴 큰 대인(大人)이란 정치적 효과(영남 민심)만 얻어내고는 흐지부지 나 몰라라 하고 있는 식언을 되새기게 한 편지였다. 그의 약속이 퇴임 후 권력을 손 놓은 탓에 빚어진 본의 아닌 식언이든 아니든 정직이라는 지도자의 덕목은 논란이 된다.

DJ가 받고 있는 편지는 김 시장의 편지뿐이 아니다.

2000년 대구 방문 때 약속한 2'28 기념사업예산 200억 원 지원 약속도 6년이 지난 지금까지 80여억 원이 이행되지 않고 있다. '대구의 2'28 정신 계승 사업을 위해 그때 약속을 지켜 주십사'는 정중한 편지는 지난주에 3번째 발송됐다. 그래도 아직 쓰다 달다 답신이 없다. 그리고 그는 오늘 명예 박사 학위를 받으러 말 빚이 남아 있는 대구에 들른 것이다.

네티즌의 가시 돋친 비판적 논쟁이 잔칫날의 예(禮)는 아니되 두 통의 편지를 생각하면 마냥 틀린 소리도 아닌 듯한 안타까움이 남는다. 그래서 학위 수여 축하와 함께 간곡히 당부 드리건대 님께서 약속하신 김 시장의 청원과 대구의 2'28 기념사업 예산 지원 약속을 명예 학위 수여 선물로 다시 한번 기억하시어 끝까지 힘써 주셨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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