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시민'. 열매 맺은 가지가 다르더라도, 열매를 보면 뿌리가 같음을 알 수 있다. 한때 중국 남부와 태국 북부지역에 사는 한 소수 민족이 TV에 소개돼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들의 언어와 풍습이 우리의 그것과 매우 흡사했기 때문이었다.
굳이 통역하지 않더라도 서로 의미가 통하는 단어들과 아이를 업는 방법, 조왕신과 짚 문화 등. 아마도 예전 어느 때, 한반도에 거주하던 우리들 중 일부가 옮겨 갔으리라 추측들을 했다.
그 레이엄 핸콕 같은 이는 온 인류의 문화적 뿌리를 하나로 보고 그 근거를 찾아 일생을 보내고 있다. 수많은 신화와 민담들에서 유사성과 공통점을 찾아내고 있다. 핸콕과 같은 열정과 노력이 아니더라도, 물리적 공간을 뛰어넘는 유사성은 쉽게 찾을 수 있다.
처음 태국을 방문했을 때, 그네들 언어로도 10이 십으로, 20이 이십으로, 30은 삼십으로 발음하는 것이 무척 신기했다. 아시아에서는 3은 모두 비슷한 음가를 가진다. 일본도, 한국도, 중국도, 태국도 3은 삼 혹은 그 비슷한 소리로 나타낸다.
지나친 확대일 수도 있겠지만, 일본과 태국 사이의 물리적 거리에도 불구하고 이들 나라들은 먼 예전 어느 때, 언어가 정착되는 그 시점 이전에 이미 다양한 것들을 공유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한다. 한 뿌리 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나무에서 열리는 열매는 대동소이 하다. 지금 형편이 좀 낫다고 해서 더 우월한 인종도 아니고 지금 좀 가난하다고 해서 더 열등한 DNA를 가진 것도 아니다. 글로벌화를 외치고 우리 학생들을 세계시민으로 길러야 한다고 하는 이즈음에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다.
부자 이웃만 이웃인지, 우리 말고는 뛰어난 민족이 없는지, 아니 뛰어나지 않은 민족도 있는지를. 물론 자긍심은 꼭 필요하다. 자기애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자격지심을 감추는 가면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한 교실에서 공부하면서 차별이 있을 수 없다는 것에 동의한다면, 한 지구에 생활하면서 차별이 없어야 한다는 것에도 동의해야 한다. 우리 아이들이 세계시민으로 자란다는 것은 세계를 무대로 활동할만한 역량을 기른다는 의미이겠지만, 그 이전에 세계를 이웃으로, 친구로 받아들일 넉넉한 마음을 기른다는 것이리라.
세계는 국경너머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웃하고 있는 세계인들과 마음 나눌만한 여유가 필요하다. 영어를 쓰지 않고 피부색이 검은 아시아인들도 세계시민들이라는 것을 가르치고, 그들 역시 어머니의 귀한 아들, 아이들의 좋은 부모임을 가르쳐야 한다. 그것이 세계시민으로 기르는 일의 최우선 일 것이다.
백운하 (주)크레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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