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박상옥 作 '지움에 대하여'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지움에 대하여

박상옥

십 년을 품고 다닌 수첩

여백이 없다.

지움은 고독을 끌어안는 일이며

망각의 숲을 걸어갈 예행연습이다.

만나서 반갑게 손을 잡고

수첩 채운 이름을

기억의 일선에서 후퇴시킬 때는

무언설법으로 피는 들꽃 이름을 불러보듯

한 번쯤 불러볼 일이다.

옷깃 스쳐간 향기 남아 있는 이름은

또 얼마의 세월이 덧없을지라도

지우지 말아야지.

세상 살다가 한 번쯤은

달려갈 수도 있는 일이니.

지움은 지우지 못하는

아픔이다.

인연의 기록인 수첩도 한 십 년이면 '여백이 없다'. 새로운 이름을 올리기 위해 혹은 아픈 기억을 잊기 위해 지워야 한다. 그러나 이름을 지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무언설법으로 피는 들꽃 이름을 불러보듯/ 한 번쯤 불러'보면서 지운다.

물리적으로는 지울 수 있지만 한 번 얽힌 인연은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차라리 '지움은 지우지 못하는/ 아픔'이 되어 가슴 속 깊이 묻히는 것이다. 그래서 '지움은 고독을 끌어안는 일'이며 죽음의 세계인 '망각의 숲을 걸어갈 예행연습'인 것이다.

손가락 하나로 이름을 입력하기도 하고 지우기도 하는 디지털 시대 수첩의 '인연의 기록'은 그런 아픔도 휘발되어 버리지나 않았는지.

구석본(시인)

최신 기사

mWiz
18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국제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정부와 여권의 검찰개혁 추진을 강하게 비판하며, 검찰 기능 축소와 보완수사권 박탈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북한은 일본...
포스코이앤씨는 최근 공사 현장에서 잇따른 사망 사고로 인해 정부의 강도 높은 압수수색과 감독 조치를 받게 되어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으며, 고...
정교유착 비리 의혹을 수사하는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신천지 전직 간부들에 대해 당원 가입 강요 사건과 관련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며, 이들은 ...
브리핑 데이터를 준비중입니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