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자
손남주
등산길 숨가삐 오르다가
반 백 년은 족히 살았을 소나무 밑둥에
무거운 다리를 털썩 꺾었다
나이테로 꽉 찬 둥글의자가
내 엉덩이에 딱 맞다
핏기는 다했지만
비와 햇살로 되려 탱탱해진 둥치가
나를 버티기엔 아직 여유가 있다
잘린 몸뚱이와 팔들은
어디에 유용하게 쓰였을지 몰라도
내게 이만큼 편안함을 준 의자도 드물었다
우연히 만나는 수많은 길목에서
나도 남에게 의자가 된 적이 있었던가
뭉게구름 두어 점 피어나는 쪽으로
문득 바람 한 줄기 불어와
내 머리카락을 솔잎처럼 흔들었다
모든 사람이 보람 있는 일을 하며 보람 있게 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보람 있는 일과 삶'은 '무엇인가?'라는 물음 앞에 쉽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우리의 생활 철학이 그만큼 빈곤하다.
이 시는 '보람 있는 일과 삶'을 명쾌하게 제시하고 있다. 소나무 밑둥처럼 '나이테로 꽉 찬 둥글의자'가 되는 삶이다. 그래서 '우연히 만나는 수많은 길목에서' 편안함을 주는 삶이다. 그러나 이 시대의 '보람 있는 일과 삶'은 스스로 '의자'되는 것이 아니라 '의자의 주인'이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보편적 가치다. 전도된 우리 시대의 가치관에 대한 아픈 성찰의 시다.
구석본(시인)





























댓글 많은 뉴스
李대통령 지지율 54.3%로 소폭 하락…전재수 '통일교 의혹' 영향?
[인터뷰]'비비고 신화' 이끌던 최은석 의원, 국회로 간 CEO 눈에 보인 정치는?
'李 대통령 질타' 책갈피 달러에…인천공항사장 "무능집단 오인될까 걱정"
'국비 0원' TK신공항, 영호남 연대로 뚫는다…광주 軍공항 이전 TF 17일 회의
김어준 방송서 봤던 그 교수…오사카 총영사에 이영채 내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