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자
손남주
등산길 숨가삐 오르다가
반 백 년은 족히 살았을 소나무 밑둥에
무거운 다리를 털썩 꺾었다
나이테로 꽉 찬 둥글의자가
내 엉덩이에 딱 맞다
핏기는 다했지만
비와 햇살로 되려 탱탱해진 둥치가
나를 버티기엔 아직 여유가 있다
잘린 몸뚱이와 팔들은
어디에 유용하게 쓰였을지 몰라도
내게 이만큼 편안함을 준 의자도 드물었다
우연히 만나는 수많은 길목에서
나도 남에게 의자가 된 적이 있었던가
뭉게구름 두어 점 피어나는 쪽으로
문득 바람 한 줄기 불어와
내 머리카락을 솔잎처럼 흔들었다
모든 사람이 보람 있는 일을 하며 보람 있게 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보람 있는 일과 삶'은 '무엇인가?'라는 물음 앞에 쉽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우리의 생활 철학이 그만큼 빈곤하다.
이 시는 '보람 있는 일과 삶'을 명쾌하게 제시하고 있다. 소나무 밑둥처럼 '나이테로 꽉 찬 둥글의자'가 되는 삶이다. 그래서 '우연히 만나는 수많은 길목에서' 편안함을 주는 삶이다. 그러나 이 시대의 '보람 있는 일과 삶'은 스스로 '의자'되는 것이 아니라 '의자의 주인'이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보편적 가치다. 전도된 우리 시대의 가치관에 대한 아픈 성찰의 시다.
구석본(시인)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野, '피고인 대통령 당선 시 재판 중지' 법 개정 추진
검찰, '尹 부부 사저' 아크로비스타 압수수색…'건진법사' 의혹 관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