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한·일 월드컵대회에서 거스 히딩크 감독이 '진공 청소기'라고 칭찬했던 김남일은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상대의 공격 예봉을 적절히 차단, 한국이 4강에 오르는데 크게 기여했다. 김남일은 2006독일 월드컵대회에서도 이을용, 이 호과 함께 중원의 수비를 책임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수비형 미드필더는 과거 각광을 별로 받지 못한 포지션이었지만 현대 축구에선 그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4-4-2 전형이나 4-4-2 전형을 기반으로 한 변형 시스템이 주류인 오늘날의 축구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는 윙 백들의 공격 가담으로 비게 되는 측면 공간을 수비하거나 상대 공격의 1차 저지선으로서 공격을 끊는가 하면 공격 속도를 늦춰 팀 수비의 핵심 역할을 수행한다. 2006독일월드컵에 나서는 국가들도 저마다 야망을 불태우고 있는데 뛰어난 미드필더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월드컵 G조에서 한국의 상대인 프랑스는 파트릭 비에이라와 클로드 마켈렐레가 '더블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고 있다. 공격형 미드필더인 지네딘 지단의 뒤에 포진한 이들 중 비에이라는 수비와 함께 지단과 마켈렐레의 사이에서 공격 패스로 연결 고리 역할을 하는 '앵커맨(anchorman)'이며 마켈렐레는 수비에 주력, 상대 공격의 맥을 끊는 '홀딩맨(holding)' 역할을 한다.
스위스의 요한 포겔은 전형적인 홀딩맨으로 포백의 앞에서 상대 공격을 차단한다. 강인한 체력, 뛰어난 위치 선점, 몸싸움과 헤딩 경합 능력, 패스의 길목을 읽고 차단하는 능력 등이 홀딩맨에게 요구되는데 포겔은 젊은 선수들로 구성된 스위스대표팀의 맏형으로 이같이 궂은 일을 묵묵히 수행한다.
우승후보로 꼽히는 브라질에는 에메르손 덕분에 호나우딩요, 카카, 호나우두, 아드리아노가 마음놓고 공격에 나설 수 있다. 에메르손은 소속팀 유벤투스에서 비에이라와 함께 파벨 네드베드의 뒤를 지키는데 유벤투스는 숨은 일꾼 에메르손 덕분에 리그 정상을 질주하고 있다.
프랭크 람파드, 데이비드 베컴, 스티븐 제라드, 조 콜 등 화려한 잉글랜드의 미드필드진은 공격력이 뛰어난데 이 중 제라드가 수비형 미드필더로 꼽힌다. 제라드의 공격 능력을 살리기 위해 수비 능력이 뛰어난 센터백 레들리 킹의 수비형 미드필더 기용도 거론되고 있다.
이탈리아의 젠나로 가투소, 체코의 토마스 갈라섹, 스페인의 사비 알론소 등도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활약이 기대되는 선수들이다.
가까이 거슬러 올라가보면 1994년 미국 월드컵대회 우승팀 브라질과 1998년 월드컵대회 우승팀 프랑스는 수비 진영에 머물면서 강한 투지와 기개, 집중력으로 상대 공격을 저지시켰던 카를로스 둥가와 디디에 데샹의 공로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2002년에 다시 정상에 오른 브라질은 질베르토 실바가 험한 일을 도맡았다.
둥가와 데샹,실바는 그래도 명성을 얻었지만 이전 월드컵대회의 숨은 일꾼들은 월드컵 역사에서 점차 잊혀져가고 있다. 브라질이 펠레와 가린샤, 디디 등 즉흥적이고 창의적인 축구로 빛을 발하던 1958년부터 1970년 대회까지 지토와 클로도알도는 중원을 지키는 파수꾼이었다. 1966년 대회 우승팀 잉글랜드에는 보비 찰튼과 보비 무어가 갈채를 받는 사이 노버트 스타일스가 묵묵히 수비에 주력했고 1974년 우승팀 서독에는 프란츠 베켄바워의 보디가드로 불리던 한스 게오르그 슈바르첸벡이 있었다. 1978년 우승팀 아르헨티나의 아메리코 가예고, 1982년 우승팀 이탈리아의 카를로 안토니오니, 1986년 우승팀 아르헨티나의 엑토르 엔리케, 1990년 우승팀 독일의 기도 부흐발트 등도 상대 공격을 차단, 자신보다 나은 기술을 지닌 팀 동료에게 공을 연결해주곤 했다.
한국의 김남일은 2002년 대회에서 수비에 주력하던 홀딩맨이었으나 최근에는 패스 능력과 넓은 시야를 갖춘 '앵커맨'으로 거듭나고 있다. 이을용과 이 호 역시 패스 능력과 프리킥, 헤딩력 등을 갖춘 수비형 미드필더들이다. 이들은 아드보카트 감독의 지시에 따라 긴장된 월드컵 무대에 굳건히 서서 상대에 따라 방어벽을 구축하는 데 주력하다 때로는 자신의 공격 본능을 살려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김지석기자 jise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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