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만들고 수리한 작품을 통해 오디오에서 들려오는 감미로운 선율,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겁니다."
남들이 고물 취급하는 중고 오디오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있다. 이를 수집하고, 고장이 난 부분을 수리하고, 다시 갈고 닦아 새것처럼 반짝반짝하게 만들고, 자신의 취향에 맞게 소리를 다듬는 것이 그들의 취미생활이다.
대량 생산된 기성 제품의 소리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자신만의 '소리'를 찾아 모인 '다(多)소리회' 식구들. 5년 전 대구역 뒤편의 '고물 창고'라고 불리는 골동품가게를 출입하며 오디오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의기투합해 만들어졌다. 그들의 '소리 찾아 가는 인생길'을 들어봤다.
# 만지고, 보고, 듣는 재미
다소리회 식구들에게는 삼락(三樂)이 있다. 오디오를 직접 튜닝하고, 오래된 제품들을 보며 과거의 향수를 느끼고, 거기에서 흘러나오는 따스한 소리에 귀를 맡기는 즐거움이다.
이들이 애지중지하는 보물은 1960, 70년대 유행했던 전축이나 앰프, 스피커, 슬라이드, LP음반 등 보통 사람들이라면 거들떠보지도 않는 고물들.
그래서 가끔은 억장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아파트 단지 앞에 버려진 수십 장의 LP판을 플라스틱과 종이로 분리수거하는 너무나 성실한 아줌마들, 구하기도 힘든 오래된 외제 스피커에서 자석을 떼어내겠다고 안간힘을 쓰는 무지막지한 아저씨의 모습에 마음이 아파 발을 동동 구른다.
이들이 오래된 오디오의 매력에 푹 빠져든 것은 아날로그 기계만의 인간적인 음색과, 이런 소리를 자신의 손끝에서 직접 창조해낸다는 기쁨 때문.
신희범(55)씨는 "비싼 돈을 들여 좋은 소리를 찾자면 고가의 하이엔드 제품이 수두룩하지만 내가 노력해서 좋은 소리를 복원하고, 새로운 소리를 창조해 내는 기쁨은 오래된 오디오에서밖에 찾을 수 없다."라고 했다.
이 때문에 이들은 기성 오디오 제품 하나도 그냥 듣는 법이 없다. 스피커를 다른 것들로 교환하고, 회로를 뜯어보고, 이것저것을 조합해 '나만의 오디오'를 만들어내야 직성이 풀린다.
오래된 물건이라고 해서 그냥 수리만 하는 것도 아니다. 직접 진공관 앰프 만들기에 도전해 벌써 여러 대의 작품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 내 사랑 오디오
'오디오와 음악'을 매개로 모이다보니 다소리회 회원은 세대를 뛰어넘는다. 막내인 김홍기(30)씨에서부터 최고령인 박판수(61)씨 사이는 아버지와 아들 뻘이지만 '형님'이라는 친근한 단어로 모두 통용된다.
아날로그적 감성을 추구하다보니 삶의 방식마저도 아날로그적이다. 모임의 공식장소는 박경규(54)씨의 살림집을 털어 만든 스튜디오이지만 회원들은 언제든지 자신의 집을 아낌없이 공개한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소장하고 있는 오디오와 앨범을 들으며 소리를 분석하고 정담을 나누다보니 이제는 회원들의 아내와 아이들까지 '비공식 회원'으로 모임에는 없어서는 안 될 주요 멤버.
이들의 오디오 사랑은 유별나다. 3년 전 "초등학교 시절 집에서 듣던 대형 전축의 음색이 그리워 다소리회의 문을 두드리게 됐다."는 김홍기 씨는 오디오에 빠져들던 초창기, 스피커를 보관할 공간이 없어 방의 침대와 책상을 들어내고 오디오 스피커 위에 매트리스를 깔고 잠을 잘 정도였다고.
박경규 씨는 아날로그 음색이 좋아 밤마다 트랜지스터를 틀어놓아야만 잠이 든다. 그는 "트랜지스터에서 흘러나오는 낮고 부드러운 소리가 옛 기억을 떠올리며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며 "트랜지스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의 파장이 숙면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보고도 있다."고 했다.
'오디오에 관심이 있다고 하면 돈 많은 사람들이나 하는 부유한 취미'라는 편견에 대해서도 이들은 할 말이 많다. 다소리회 5대 회장 김기현(37)씨는 "술을 마시거나 골프를 치는 여느 중년의 남성들과 비교하면 오히려 비용이 적게 드는데다 집에서 함께 음악을 듣는 시간이 늘어나 가족 모두가 함께 행복해지는 취미"라며 "오디오 동호회를 통해 누구나 한번쯤은 거치는 시간적, 금전적 시행착오를 줄여나갈 수 있다."라고 했다.
"죽기 전에 한곡이라도 더 좋은 음색의 소리를 듣고 감동을 받고 죽고 싶다면 웃기는 말일까요? 값비싼 오디오에 집착할 필요 없이 먼지 냄새 폴폴 풍기는 낡은 오디오에서 펼쳐지는 새로운 세계에 빠져들다 보면 행복이 바로 여기 있구나 싶습니다." (2006년 4월 20일자 라이프매일)
한윤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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