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예술의 향기?…돈 냄새만 물씬"

수영·헬스…지자체 문예회관 상업공간 '변질'

지자체마다 수백억 원씩 들여 지어 놓은 문화예술회관에 비문화 행사와 상업성 행사가 판을 치고 있어 빈축을 사고 있다.

운영능력은 물론 운영재원조차 마련해 두지 않은 자치단체들이 건물만 덜렁 지어 놓은 뒤 회관을 아예 '세외수입 올리는 곳'으로 변질시키고 있는 것.

지난 11일 오후 대구 달서구 장기동 '달서첨단문화회관' 대공연장. 수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러나 무대 위에는 한 명의 배우도, 연주자도 보이지 않았다. 자리에 앉은 한 관객에게 "무슨 공연을 보러 왔는지" 물었더니 의아하다는 듯 쳐다봤다. 곧이어 달서구음식업협회에서 주관하는 식품위생교육이 시작됐다.

이곳 운영담당 공무원들에게 확인한 결과 달서첨단문화회관이 지난해 전문공연단체에 공연장을 빌려준 것은 18차례 뿐. 지난해 1년 동안 전체 대관횟수 128회 가운데 85%가 식품위생교육 등 문화공연과 직접적 관련이 없다는 것.

같은 날 오후 서구 이현동 '서구문화회관'. '갤러리'라는 표찰이 붙은 곳의 문을 열어보니 노래방 기기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여러 개의 의자들도 널려 있었다. 이곳이 갤러리로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줬다.

실제로 각 문예회관의 지난해 갤러리 대관 현황을 파악한 결과, ▷서구문화회관 6회(31일) ▷달서첨단문화회관 11회(79일) ▷북구문화예술회관 19회(69일) ▷동구문화체육회관 39회(221일) 등에 머물렀다.

문예회관의 파행운영은 이뿐이 아니다. 각 구청은 아예 문예회관 곳곳을 임대, 수익사업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지난 11일 오전 10시 북구 관음동 북구문예회관. "하나 둘 찍고, 하나 둘 돌고" 경쾌한 음악 사이로 에어로빅 복장을 한 여성들이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문화관'이라고 쓰인 곳에서는 러닝머신에 몸을 맡긴 여성들과, 스쿼시 라켓을 쉼없이 휘두르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사실상 스포츠센터였다.

북구문예회관은 헬스, 에어로빅 등 체육시설과 예식장 및 웨딩숍 임대수입을 통해 지난해 1억 6천여만 원을 벌어들였다.

수영장·체육관·헬스장·예식장 등이 있는 동구문화체육회관도 지난해 전체 수입 15억 5천여만 원 중 임대수입(8억 3천만 원)이 절반을 넘었다. 달서첨단문화회관은 지난해 전체 수입 2억 4천300만 원 중 수영장 임대수입이 1억 5천200만 원에 이르렀다.

대경대 연극영화방송학부 장진호 교수는 "문예회관에 문화예술의 향기는 온데간데없고 상업성 행사가 더 많은 것은 세금을 통해 문예회관 건축 재원을 부담한 시민들을 우롱하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민선 단체장들이 표를 얻으려 전시행정을 펴는 데 앞장서면서 너도나도 건물 지어 올리는 데만 신경쓰다 보니 결국 이러한 문제가 발생했으며 이제라도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라는 소프트웨어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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