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람과 삶] "이 웃음이 있기까지!"…'인생유전' 유시형씨

'압력밥솥으로 지은 따뜻한 밥이 든 도시락 6개 대(對) 찬밥으로 만든 사각도시락 1개'

소매치기가 '유일한 생계수단'이라고 생각하고 20여 년간 전국 30여곳 교도소를 제 집 드나들 듯 했던 유시형(54.대구시 달서구 두류동) 씨. 따뜻한 도시락 6개는 유 씨가 새 삶을 살면서 아내가 데려온 두 딸을 위해 4년간 매일 해왔던 봉사다.

유 씨는 일곱살 때 아버지가 재혼하면서 버려져 고아원에서 자랐다. 열세살 때부터 소매치기 세계에 빠져든 그는 별다른 죄책감도 없이 교도소가 집인 마냥 6개월, 1년 등 실형을 살고 나와 또 남의 주머니 속 지갑을 털면서 지내왔다.

이런 그가 새 삶을 살게 된 건 17년 전 교회에서 장점숙(46.여) 씨를 만나면서부터. 아내 장씨를 만난 것도 한편의 드라마였다.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던 유 씨를 눈여겨 본 장모가 딸을 소개했다. 남편과 사별후 혼자였지만 주변에선 전과자와 어떻게 살겠냐며 만류했다. 하지만 처남도 이젠 신실한 사람이라며 적극 도와줘 결혼에 골인할 수 있었다.

문제는 아내 장씨의 두딸. 두 딸은 유 씨를 부끄럽게 생각했다. 아예 아버지로 인정하지도 않았다. 특히 직설적인 말을 내뱉는 큰 딸 이미남(26.계명대 식품영양학과 대학원) 씨와는 부딪히는 일이 잦았다. 서로 상처주는 욕을 하기도 했다. 말이 없는 둘째 미현(25.간호사) 씨 역시 차가운 시선으로 대했다.

두 딸과의 갈등으로 괴로울 때마다 '다시 소매치기나 할까?' 하루에도 수십차례 이런 유혹에 빠졌다. 또 한편으론 '누군가에게 인정받는게 이리도 힘들구나.' 하는 좌절감도 들었다.

그럴 때마다 유 씨는 다짐했다. '내 안에 다른 누군가를 위해 살고 있는 새 사람이 들어왔는데 여기서 포기할 수 없다.'

그는 교도소 취사반에 있었던 경험을 살려, 고등학생이던 두 딸의 도시락을 싸기 시작했다. 하루 6개씩 꼬박꼬박 정성스레 준비하면서 아픈 마음을 달랬다. 하지만 두 딸은 도시락을 가져가면서도 썩 내켜하지 않았다.

두 딸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 건 유 씨의 도시락을 보면서부터. 두 딸에겐 정성들여 따뜻한 밥을 지어 도시락을 싸면서도 막상 자신의 도시락은 늘 식은밥이었다. 막노동, 노점상 등을 나가는 아버지가 눈물섞인 점심을 먹는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유 씨는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가장 값싼 담배를 피웠고 버스비가 아까워 걸어다니기도 했다. 집안 청소, 빨래 등도 자발적인 그의 몫.

아픔이 컸기 때문일까. 찾아온 기쁨도 컸다. '도시락 싸기' 3년이 지나고 큰 딸이 대학에 입학할 즈음 그는 이 가정의 어엿한 아빠가 되어 있었다. 두 딸과는 흉금없이 지내며 어떤 얘기도 할 수 있는 사이가 됐다. 아내로부터도 사랑받는 남편이 됐다.

두 딸은 "사실 엄마가 싸주는 도시락보다 그 당시 아빠가 싸준 게 더 맛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큰 딸은 "이제 친구들에게도 우리 아버지가 한 때 소매치기였다고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을 정도로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라고 밝혔다.

현재 3년째 '피라미드 불 한증막'에서 나무연료를 때고 빨래, 청소 등을 하는 유 씨. 새벽 5시만 되면 나무장작을 기중기에 매달아 4층까지 올리고 280도의 고온에서 불을 지피고는 녹초가 돼서 나온다. 하지만 비오듯 흐르는 땀방울 속에는 가족을 향한 뭉클함이 배어있다.

지난해 12월 유 씨 가족은 자신들만의 보금자리도 장만했다. 이제 곧 두 사위도 차례로 맡게 된다. 가정에는 늘 웃음과 믿음이 넘친다. '막둥이' 슈나이저 종 애완견마저 표정이 밝다.

소매치기에서 어엿한 한 가정의 가장으로 거듭난 유 씨. 그는 "나에게 이런 감동적인 삶을 준 아내와 두 딸에게 감사한다."며 "가족이 이렇게 포근한지 미처 몰랐다."고 기쁨의 눈물을 보였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