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미리 준비하는 은퇴 '노테크' 이렇게 짜라

대기업 부장으로 근무하는 박규식(50) 씨. 얼마 전 친구 모임에 나갔다가 갑자기 우울해졌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화제는 자연스럽게 퇴직 후 어떻게 살 것인가로 이어졌고,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니 한심스러워 진 것이다.

"정말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런데 제대로 해놓은 건 없는 것 같습니다. 이제 기껏해야 직장생활 5, 6년이 남았는데···. 정말 머리가 아파집니다."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는 직장인들에게 어느 날 문득 다가오는 퇴직의 공포(?). 특히 은퇴 후 경제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는 공통의 관심사이자 숙제이기도 하다.

◆은퇴 이전에 상속·증여 플랜을 짜라=상속이나 증여는 부자들만의 고민으로 생각하기 쉽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공제혜택이 있어 배우자와 자녀가 있는 보통 가정에서는 부동산과 현금을 합해 10억 원(시가기준 15억 원 안팎) 정도는 상속세를 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무관심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PB(프라이빗뱅킹) 전문가들은 "상속·증여 플랜은 단지 절세 대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 모두가 현재의 재무 상태를 면밀히 점검해 안정된 미래를 대비한다는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상속재산 10억 원 미만의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도 상속·증여 플랜을 짜보는 것은 노후설계에 큰 도움이 된다.

사실 상속·증여세법은 상당히 복잡하다. 그러나 상속·증여세는 누진과세 되고, 상속의 경우 증여와 달리 공제혜택이 주어진다는 등 몇 가지 기초지식만 알아도 간단한 계획을 세워볼 수 있다.

사전증여를 한다면 예금보다 집 한 채를 제외한 부동산을 우선순위에 두는 것이 유리하다. 부동산은 시가 파악이 어려워 국세청 기준시가가 해마다 상승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 10년 이내의 증여는 상속재산으로 통합 과세 된다는 사실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10억 원 이상의 재산을 자녀에서 물려줄 계획이라면 최소한 10년 전부터 부동산, 주식, 보험 등의 순으로 증여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생활비는 은퇴자산의 4~5% 이내로 제한하라=은퇴 초기 해외여행 등 지나치게 여유로운 생활을 계획하고 있다면 자칫 불우한 말년을 맞을 수가 있다. 금융 전문가들은 은퇴자 재무설계의 첫 출발은 소비패턴을 조정해 소비수준을 현직 때의 70% 밑으로 낮추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60세에 퇴직하고 80대까지 산다고 가정할 때, 주거용 주택을 제외한 은퇴자산(퇴직금·국민연금·개인연금 등 포함)의 4~5%를 매년 사용하도록 설계하는 것이 적정하다는 것. 물론 수명이 더 늘어난다고 가정하면 사용금액을 더 줄여야 한다.

또 비록 작은 규모라도 집 한 채는 최후의 보루로 남겨두는 지혜가 필요하다. 수명이 예상 밖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발표대로 2007년부터 역모기지론이 도입되면 집을 담보로 사망할 때까지 생활비를 안정적으로 마련할 수 있다.

◆은퇴시기를 최대한 늦춰라=은퇴 이후 재무 설계가 갑자기 중요해진 것은 저금리와 고령화, 조기퇴직이 한꺼번에 닥쳐온 탓이다. 예를 들어 50세에 조기퇴직하고 85세에 사망한다고 가정하면 은퇴자산으로 무려 35년을 버텨야 하는데, 과거와 같은 주먹구구 재무설계로는 도저히 행복한 노후는 불가능해진다.

은퇴자산을 운용할 때는 수익보다 리스크 관리가 더 중요하다. 그렇다고 전 재산을 연 4% 은행예금에 몽땅 맡기는 전략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국민은행 대구PB센터 손석호 과장은 "유사시를 대비해 현금은 생활비의 3~4개월 치를 보유하고 나머지 단기 유동성 자산은 MMF나 MMDA와 같은 고금리 상품에 예치하면서, 리스크가 가장 큰 주식은 100에서 자신의 나이를 뺀 수치만큼 비중을 유지하는 것이 위험을 줄이면서 안정적인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은퇴 후 동업을 하거나 창업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가 우세하다. 금융 전문가들은 "은퇴 후 사업을 시작하는 것은 은퇴자산을 털어먹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면서 "그 대신 파트타임이든 아르바이트든 최소한의 생활비를 벌 수 있는 황혼직업을 찾아 경제활동시기를 가능한 한 최대한 늦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석민기자 sukm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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