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는 바보상자'라는 말에 대부분이 공감한다. 하지만 막상 TV 없이 하루라도 버티라고 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 만큼 TV는 담배보다 더 끊기 힘든 유혹이다. 하지만 물 밑에서 조심스레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지난해 'TV 안보기 시민모임'이 생기더니 하나둘 TV 없이 생활하는 가정들이 늘고 있는 것. 이런 와중에 지난주(1~7일)는 시민모임이 정한 세 번째 'TV 안보기 주간'이었다.
'과연 TV 없이 살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가득 안고 찾아간 석줄기(37.대구시 수성구 욱수동)씨 가정. 어느 집이나 TV가 켜져있을 시간인 오후7시30분, 이 집 거실에 들어서자 무언가 허전하다. 위풍당당하게 거실을 차지하고 있어야 할 TV가 보이지 않는다. 대신 가족 전체가 테이블에 오순도순 모여 누가 봐도 다정스럽다. "가족 모임 시간이에요. TV 있을 때보다 대화 시간이 2배는 늘어났어요." 부인 정유정(35)씨가 조금은 멋쩍어 하며 입을 뗀다.
석씨 부부가 TV를 없애는 '대단한 도전'을 하게 한 힘은 역시나 자녀들 사랑이었다. 난시가 있는 둘째 딸 다인(7)양의 시력이 걱정되는데다 독서 습관을 키워주기 위해서였다. "예전부터 TV를 안 보려고 했는데 잘 안되더라고요. 특히 첫째와 달리 둘째가 너무 TV를 좋아해서 걱정을 많이 했죠." 2004년 10월 거실에 있던 큰 TV를 없앤 이래 이들은 TV와 손을 흔들었다.
'TV 없애기'는 석씨에겐 엄청난 날벼락이었다. 대학교 교수인 석씨는 TV를 끼고 사는 전형적인 '소파족'. "귀가하면 잘 때까지 TV를 켜놓는 게 다반사였죠. 휴일에는 하루 종일 TV와 시름했어요. 스포츠광이거든요." 옆에서 정씨가 한마디 거든다. "TV 때문에 싸우기도 많이 했죠." 석씨는 부인 정씨가 처음 TV를 없애자고 했을 때 마지못해 수긍을 했지만 정말 없앨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단다.
TV가 사라진 날부터 석씨에겐 '행복 끝, 불행 시작'이었다. 담배와 같이 금단 현상이 생겨난 것. 그렇게 친하게 지내던 TV가 자취를 감췄으니 갈팡질팡할 수 밖에. "거의 3, 4개월 정도는 미치겠더라고요. 집에 오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어요. 할 수 없이 라디오를 켜놓고 자기도 하고 참다 참다 안 돼 TV를 다시 사고 싶은 충동이 하루에도 수없이 끓어오르더라고요."
그렇게 고비를 넘긴 석씨는 이제 누구 못지않은 'TV 반대론자'로 거듭났다. "지나고 보니까 TV의 해악이 하나둘이 아니었습니다. TV는 사람을 수동적으로 만들고 항상 시간에 쫓기게 만들잖아요. TV 시청은 미리 염두에 두고 생활하니까요." 석씨 가족은 이제 아침형 인간으로 변모했다. 귀가해도 크게 할 일이 없으니 밤 10시에 자고 다음날 새벽 6시에 일어나는 습관이 생겼다고 한다. TV 없애는 명분이었던 다인 양도 책과 점점 가까워졌다. 정씨는 "아이의 시력도 TV를 없앤 뒤 더 이상 떨어지지 않고 있다."고 좋아했다.
사실 걱정거리도 없지는 않다. 아이들이 TV 세계와 단절되다보니 또래 문화와 어울리지 못할까봐서다. 다행히 TV의 빈자리를 인터넷이 어느 정도 해결해주고 있다. 정씨는 "두 달에 한 번 정도는 아이들에게 인터넷을 통해 1, 2시간 애니메이션이나 개그 프로그램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석씨도 가끔 중요한 스포츠 경기나 뉴스 등을 인터넷을 통해 보고 있다. "그래도 얼마 남지 않은 독일월드컵을 기다리면 조금은 안타깝죠. 온 국민이 TV 중계를 보며 열광할건데. 그 때는 인터넷을 보거나 길거리로 나가야죠."
석씨는 무엇보다 'TV 안보기'를 위해서는 확실한 명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혼자만의 의지로는 절대 끊기 힘들어요. 자녀들 교육처럼 어떤 뚜렷한 이유를 가져야 하지요. 서로 마음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모여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에요."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사진·정재호편집위원 newj@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