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알 권리와 사생활 보호
한나라당 박계동 의원이 술자리에서 동석한 여성의 몸을 더듬는 모습이 찍힌 동영상이 인터넷에 유포돼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박 의원은 성추행은 없었다고 항변하면서 "지방선거를 앞두고 야당 의원의 이미지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몰래카메라(몰카) 동영상이 공개된 것은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일부 여성단체는 물론 다른 정당들도 정치적 공격의 소재로 삼고 있다. 개인의 사생활을 몰래 찍어 인터넷에 공개한 것은 명백한 위법이지만 국회의원으로서의 기본적인 자질과 도덕성을 의심받을 처신을 했다며 "사회 지도층의 사생활 보호는 국민의 알 권리와 직결된 사안이므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대다수 언론들은 국민의 알 권리와 사생활 보호 논란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지만 어느 쪽을 중시할 것이냐에 대해서는 각기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
▨ 사생활은 보호돼야 한다
박 의원 케이스에 대해 동정적인 여론은 대체로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하는 데 비해 인권 보호는 따르지 못하고 있다면서 현실상에 대한 문제부터 제기한다.
'전국에 250만 개가 설치돼 있는 것으로 추산되는 폐쇄회로(CC) TV 실태에서 알 수 있듯이 시민들의 사생활은 알게 모르게 누군가가 훔쳐보고 있다. 특히 인터넷의 발달로 한 번 노출된 사생활 정보는 걷잡을 수 없이 순식간에 퍼진다. 지하철에서 애완견의 대변을 치우지 않고 내렸다가 곤욕을 치른 '개똥녀' 사건, 서울대 도서관 폭행 사건의 당사자들은 '마녀 사냥' 식 인신공격에 시달렸다. 도덕적으로 비난 받을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이들에게 '용서' 란 없었다.'(신문 기사)
그러면서 박 의원 몰카의 제작·배포 배경에 나쁜 의도가 있었다는 의심을 들이대고, 사생활 보호에 무게를 둔다. '이번 사건에는 의문점이 많다. 술집에 드나드는 수많은 손님 가운데 유독 박 의원을 겨냥해 몰카를 촬영하고, 공개한 이유가 뭘까. 아무리 공인(公人)이라 하더라도 사생활은 있다. 사회적 폐해로 보면 박 의원의 행동보다 몰카로 이익을 취하려는 개인이나 세력이 훨씬 더 큰 문제다. 몰카 등 사생활 침해와 개인정보 유출은 엄단해야 한다.'(신문 사설)
술자리의 성격에 따라 다르게 판단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만약 유포·공개된 동영상이 몰카로 촬영됐고, 문제의 술자리가 사적인 자리였다면 사생활 침해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는 얘기다. 가령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의 경우 국정감사 중 피감기관과의 술자리에서 벌어진 추태이기 때문에 언론보도의 공공성이 인정된다는 해석이다.
박 의원은 몰카 동영상의 공개와 유포 행위는 물론 언론 보도에 대해서도 '2차적 공개'로 보고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그는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몰카 형식의 영상물이 무차별적으로 공개되는 것은 사생활 비밀 및 통신의 자유를 정면으로 침해하는 것"이라면서 "불법 동영상물의 2차적 공개행위에 가담한 인터넷 매체와 언론사에 대해서도 민형사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공인은 사생활 공개를 감수해야 한다
박 의원의 몰카는 담긴 장면이 국회의원으로서의 도덕성에 흠집이 날 만한 내용이었다는 점 때문에 비판받고 있다. 술자리에서 상대 여성을 성추행하는 추태를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저급한 문화를 뿌리 뽑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한나라당 최연희 의원의 기자 성추행 사건과 묶어 비난하는 각계의 목소리는 좀체 사그라들지 않을 전망이다.
비난하는 여론은 대개 몰카의 위법성은 인정하지만 박 의원의 행위는 별개로 취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누가 무슨 의도로 촬영해 공개했는지는 수사를 통해 밝혀내고 처벌하면 될 일이다. 그러나 동영상 공개의 불법성과 술자리의 '부적절한 행위'에 시비를 가리는 건 별개의 문제다. 박 의원은 '오해를 받을 사려 깊지 못한 행동'을 뭉뚱그려 사과했지만 정작 성추행 사실은 부인했다. 술자리의 성격과 여성이 동석한 이유는 어물쩍하면서 사생활 침해의 불법성만을 강조했다. 국회의원으로서의 기본적인 자질과 도덕성을 의심받을 처신을 한 데 대해 진정한 반성으로 보기 어렵다.'(신문 사설)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에 따라 점점 노출되는 사생활이 문제되는 건 사실이지만 이런 현실을 받아들여 처신에 더욱 주의해야 한다는 지적도 설득력이 있다. '첨단 디지털 세상을 맞아 공인은 숨을 곳이 없다. 휴대전화 보급률 80%에 초고속인터넷 보급률 75%인 세계 최강의 IT대국이다. 수백만 대의 과속단속카메라에 방범카메라가 널렸고, GPS로 지금 어디에 있는지까지 가려낸다. 사생활 보호를 주장하기엔 세상이 너무나도 열려 있다. 언제 어디서 누구 눈에 띄어 구설수에 오를지 모를 세상인 것이다. 박 의원이 아니라도 올바로 처신하지 않고는 살아갈 방도가 없다 하겠다.'
이는 일반인에게도 해당된다. '어쨌든 현대인들이 몰카의 위협에서 자유로운 삶을 산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인다. 차라리 감시당할 수밖에 없는 냉엄한 현실을 직시해 평소 처신을 바르게 하려 노력하는 것이 어떨까.'
언론 매체의 2차적인 보도에 대해서는 국민의 알 권리가 더 중요하다는 주장이 인용된다. '공인으로서 국회의원의 부도덕한 행위를 고발하는 것은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필요하며, 일부 사생활 침해가 있더라도 공익 목적에 위배되지 않을 경우 위법성이 없다는 판례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법원은 그동안 공인의 사생활 보호와 국민의 알 권리가 충돌할 경우 무차별적인 사생활 폭로는 안 되지만 공공의 이익에 부합될 경우 면책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여 왔다.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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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통신과 에너지 산업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미래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말하시오.(고려대)
·우리는 현재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수많은 정보 중에서 가치 있는 정보를 어떻게 선별하는가? 인터넷을 통해 얻은 정보와 서적을 통해 얻은 정보는 어떤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는가?(서울대)
·인터넷이라는 매체가 현대인에게 미치는 장·단점을 말해 보시오.(한국외국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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