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우리 마음의 월드컵

2002년 한·일 월드컵대회 당시 한국의 4강을 이끌었던 거스 히딩크 호주 감독은 "2002년의 기억을 떨쳐버리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독일월드컵대회를 준비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맞는 말이다. 20여일 앞으로 다가온 독일월드컵대회에서 국가대표팀 선수들뿐만 아니라 한국 축구를 성원하는 국민들도 이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굳이 따지자면 한국 축구는 홈 그라운드에서 열린 2002 월드컵대회를 제외하고 월드컵 대회에서 아직 1승도 거두지 못했으며 이는 한국 축구의 새로운 도전이 시작됨을 의미한다. 2002년의 성공으로 생겨난 자신감은 한국이 독일월드컵에서도 토고와 스위스를 물리치고 프랑스와 함께 16강에 진출할 것으로 낙관하는 분위기가 강하지만 토고를 얕볼 수 없으며 스위스는 더더구나 만만한 상대가 아닌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토고는 대표팀 선수들이 제때 소집에 응하지 않는 등 분위기가 어수선했지만 아프리카 특유의 유연성과 개인기에다 조직력을 다져가고 있고 스위스 축구는 강호로 인정받아오지 못한 유럽의 변방이지만 1950년대 이후 중흥을 준비하면서 전력이 상승세에 있는 팀이다. 신·구가 조화를 이룬 스위스 대표팀은 본선 진출 32개국 중 조직력이 두드러진 팀으로 개인 기량보다 조직력에 비중을 둬야 하는 한국으로서는 상대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스위스는 독일이 홈 그라운드나 다름없어 객관적인 전력과 여건에서 한국은 유리한 점이 별로 많아보이지 않는다.

2002년의 기억을 떨쳐버리라지만 대한민국을 열광의 도가니에 빠트렸던 4년전 6월을 우리는 잊을 수가 없다. 폴란드와 미국, 포르투갈에 2승1무를 거두고 조 1위로 16강에 올라 이탈리아와 스페인을 연파하며 4강에 올랐던 그 감동을 어찌 잊을 수가 있을 것인가. 안정환의 헤딩 골든 골, 김남일의 악착같은 저지, 마스크를 쓴 김태영의 저돌적인 방어, 후배들을 다독이는 황선홍의 태도, 수비를 지휘하는 홍명보의 단호한 표정과 4강을 결정짓는 페널티킥 성공후 환하게 웃던 모습....그리고 거리를 가득 메우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던 붉은 악마와 우리 국민들.

기억을 더 되돌려보자. 2002년 이전에는 참담한 실패가 거듭됐었다. 1986년 월드컵에선 아르헨티나와 이탈리아에게, 1990년 대회에선 스페인과 우루과이에게, 1994년엔 독일과 스페인에게, 1998년엔 네덜란드와 멕시코에게 밀려났었다. 박창선의 중거리 슛과 황보관의 대포알 슛, 서정원의 극적인 무승부 골 등 기쁜 순간이 있었지만 한국 선수들은 경기후 그라운드에 힘없이 주저앉거나 고개를 떨군 채 말없이 경기장을 빠져 나오곤 했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 역시 좌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번 독일월드컵을 앞두고 태극 전사들은 이제 예전처럼 주눅들지 않고 당당한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상대의 전력을 냉정히 평가하면서도 우리 실력을 믿고 16강에 진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한 자신감은 결과에 관계없이 우리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실력을 충분히 발휘하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2002년에도 그랬듯이 2006년에도 우리 선수들은 최선을 다해 전진하려 할 것이다. 한 경기 한 경기 준비를 잘해 상대를 이기도록 노력하고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그라운드에 땀을 쏟아부으려 할 것이다. 우리 국민들은 밤이나 새벽에 열리는 한국의 경기를 응원하기 위해 TV를 시청하고 그 시간에도 거리 응원에 나설 것이다.

공간을 찾아 질주하는 박지성, 수비 벽 사이로 슛을 날리기 위해 몸을 돌리는 안정환, 상대 스트라이커를 저지하기 위해 몸을 부딪히는 김남일과 최진철의 모습이 벌써부터 떠오른다. 선수들의 투혼과 승부가 진행되는 과정을 즐기자. 우리가 멈춰서는 순간이 어디일지 모르겠지만 멈추는 그 순간까지 함께 전진하기를. 그리고 행운의 여신이여, 대한민국에 미소 짓기를.

김지석 스포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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