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소란한 대화

어느새 봄이 지나가나 보다. 낮에는 짧은 팔을 입고 가만히 있어도 더울 정도이다. 대구는 역시 봄이 너무나 짧다. 약간은 무더운 늦봄, 서울로 가는 동대구 역 플랫폼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서 너무나 시끄럽게(?) 떠들면서 대화하고 있었다.

서로서로의 눈을 보면서 웃고 손벽치고.... 유난히 맑은 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떠들고 있는 모습을 주변의 사람들은 그저 빙긋이 바라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들은 다름아닌 청각장애인들이었으며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는 나는 많은 느낌을 받았다.

대화할 때 서로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손짓하나 놓치지 않으려고 상대방에게 끝없는 관심을 가지면서 대화하던 그 모습들을 보면서 나의 지난 생활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기회가 자연적으로 많아질 수 밖에 없는 직업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윗사람보다 아랫사람들이 어느덧 많아져 들을 기회보다는 말할 기회가 더 많아진 것이다.

더구나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려 해도 말해주는 이들이 점점 줄어들어 들을 기회가 더욱 적어진 것이다. 우리가 말하면서 다른 이들의 말을 귀담아 듣고 또 상대방의 눈을 보면서 이야기 하는 경우가 얼마나 있었던가.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주지않고 짧은 시간에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되돌아 볼 일이다. 요즘은 선거철이다. 많은 후보들이 텔레비전을 비롯한 방송매체에 나와 토론하는 모습을 지켜볼 때가 있다.

그런데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말만 하다보면, 아무런 결론없이 늘 하던 이야기만 앵무새 처럼 되풀이하다 끝나고 마는 경우가 허다하다. 앵무새가 말하는 것은 처음은 신기할지 몰라도 한 두 소절만 녹음기처럼 지껄이는 그 말에는 진지한 대화도 참된 토론의 여지도 없다.

대화란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음으로 해서 시작되는 것인데 모두 자기 말들만 앞세우니 의미있는 대화는 애시당초 시작도 못하고 끝마치고 마는 것이다. 그 모두가 시간낭비 돈낭비 정력낭비가 아니던가.

이 바쁜 시간에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귀를 기울이다가도 부질없는 앵무새들의 이야기만 듣고 나면 그 한심스러움에 우울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이제 우리는 앵무새같은 화법을 그만 두고 진지하게 대화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상대방의 눈을 보면서 소리없는 말을 들으며 상대방이 전하는 마음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던 동대구 역 플랫폼의 그들처럼....

박재우(경북대 성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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