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대표 피습 범행동기와 의문점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피습사건의 전모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는 가운데 과연 왜 범인 지충호(50) 씨가 5·31 지방선거가 임박한 미묘한 시점에서 흉기를 휘둘렀는지 그 범행동기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범행동기에 따라 이번 흉기 피습사건이 정상적인 상태가 아닌 사회적으로 소외된 자가 벌인 우발적 돌출행동인지, 아니면 명백한 정치적 의도를 가진 '정치 테러' 인지가 가려지게 되고 이는 향후 정국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밤샘 조사 끝에 경찰이 1차로 추정한 범행동기는 1991년부터 15년에 가깝게 장기 복역을 한 지 씨의 사회에 대한 불만과 억울함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 씨가 국가인권위원회 등 여러 국가기관에 이런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외면당했고 결국 이를 야당 대표를 흉기로 가해하는 방식으로 표출했다는 게 경찰의 분석이다. 지 씨가 지병(당뇨)을 앓고 있는 데다 가족과 왕래 없이 미혼으로 혼자 살고 있다는 점도 이런 추측을 뒷받침한다.

경찰은 일단 '비정치적'인 돌출행동이라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런 경찰의 발표를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여러 의문점이 남는다. 경찰 조사에서도 드러났듯 지 씨가 오세훈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의 유세 일정을 사전에 파악했고 범행 도구도 미리 준비하는 등 제법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했다는 점에서 경찰의 발표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특히 지 씨가 지난해 12월 사립학교법 개정 장외투쟁 중인 한나라당의 유세현장을 찾아가 K의원을 폭행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지 씨의 이번 범행이 경찰의 시각과는 달리 다분히 '정치적' 의도가 있었지 않느냐는 주장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또한 보통 '사회적 불만과 국가권력에 의한 피해'가 동기인 범죄의 대상이 불특정 다수이거나 공공시설 또는 청와대나 국회와 같은 권력기관인데 비해 이번 범행이 여당도 아닌 야당의 대표라는 점도 우발적 사건으로 넘기기엔 석연치 않은 부분이다.

경찰 일각에선 '지 씨는 자신이 한나라당(옛 민자당·신한국당) 집권 시절 억울하게 수감됐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조심스런 접근을 하고 있지만 10여 년이 지난 시점에서 직접적인 범행동기로는 이해하기 힘들다는 관측도 있다.

지 씨의 배후와 공범 존재 여부도 이목이 쏠리는 수사의 초점이다. 지 씨는 경찰에서 단독범행임을 주장했으나 현장에 있었던 한나라당 관계자에 따르면 지 씨의 범행 뒤 3, 4명이 이를 독려하는 소리를 쳤다고 맞서고 있다. 공범 또는 사전에 지 씨의 '계획'을 안 동조세력이 있었다면 이는 특정 정당을 겨냥한 집단적인 정치테러로 볼 수 있어 정치적인 파급효과가 큰 만큼 경찰이 반드시 밝혀야 할 부분이다.

지 씨가 정상적인 정신상태였는지, 즉 정신과적인 이상은 없는지도 의문이다.

경찰 고위관계자는 "아직 계획은 없지만 향후 필요하다면 정신감정도 의뢰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지 씨가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는데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표현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20일 밤 긴급 기자회견에서 이택순 경찰청장이 자세한 상황을 보고받지 못하고'범인이 음주상태'라고 성급히 발표해 정치공세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비난이 일자 경찰은 정신감정 문제엔 매우 신중한 입장이다.

섣불리 정신감정을 하겠다고 발표했다가는 '음주 실책'과 맞물려 이번 사건을 지 씨 개인의 문제로 축소하고 있다는 정치적 공격을 받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경찰이 이례적으로 한나라당과 그 지지자들의 수사 입회를 허용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그러나 강한 반(反) 한나라당 정서를 갖고 있던 지 씨의 소영웅주의적 행동일 수 있다는 점에서 지 씨의 정신감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지방선거를 목전에 둔 현 시점에서 수사 결과가 어떤 방향으로 나오든 '정치색'이 입히게 될 이번 사건에서 경찰이 이런 의혹을 어떻게 밝혀낼 것인지 주목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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