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와 광부를 독일로 파견할 때 우리 경제 수준은 세계 최하위였다. 동남아 여러 나라보다 국민소득이 떨어지던 시절이었다. 일자리가 없던 그 시절, 초기 파독 광부 3분의 1 정도는 대졸자였다. 그들은 고향에 남은 부모 형제를 먹여살리는 가장인 한편 헐벗고 굶주린 나라를 산업화'근대화로 이끈 선봉이었다. 이역만리에서 피'땀과 눈물로 번 그들의 월급은 외국 돈을 빌릴 때 내놓은 우리의 담보였다.
○…독일에서 경제 개발 5개년 계획과 추진에 필요한 차관을 들여올 때 제공된 담보는 파독 간호사와 광부의 월급이었다. 그들의 노동력은 우리나라가 제공할 수 있는 유일의 담보였다. 그들의 급여를 담보로 차관을 들여 온 당시 박정희 대통령을 '대처에서 식모살이를 하는 딸 자식의 주인을 찾아가 돈을 꾸는 부모'의 처지에 비유한 이도 있다.
○…독일로 간 간호사들은 곳곳으로 흩어졌다. 현지 간호사가 꺼리는 벽촌의 양로원이나 병원 영안실이 그들의 몫이었다. 노인 치다꺼리나 시체를 알코올로 닦는 일이 맡겨졌다. 몸서리치는 일에 말도 통하지 않았지만 한국인 특유의 부지런과 친절을 잊지 않았다. 눈치도 빨라 스스로 일을 찾았다. 그 덕에 곧 독일 사람들에게 파독 간호사는 '코리안 에인절'로 불렸다. 고통과 눈물을 딛고 천사로 일어섰다.
○…며칠 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파독 간호 40주년 기념 행사가 열렸다. 꽃다운 나이의 젊음 대신 노년의 주름이 가득한 면면이었다. 통신시설이 열악하던 당시 어쩌다 국제전화라도 연결되면 몇 시간 놓을 줄 모르고 한국 사람이 왔다 하면 천릿길을 달려오던 그들은 이날도 서로 안부와 소식을 전하느라 북새통이었다고 한다. 간호사를 파견하고 그들의 월급을 담보로 잡은 일은 모두 정부가 했지만 그들의 한을 달랜 40주년 행사는 민간기업이 대신했다.
○…독일에서 견뎌낸 세월은 꿈같이 아련하지만 여전히 그들에게는 아픔이 남아 있다. 부모 형제를 대신해 흘린 피와 땀을 알아주는 이도 이제는 많잖다. 그러나 그들 중엔 독일 사람들의 따뜻한 배려가 낯선 이역 생활을 견디게 했다는 이가 많다. 이제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인 우리나라 방방곡곡에도 외국 근로자가 일하고 있다. 그들에 대한 따뜻한 배려가 파독 간호사를 위로하는 일은 아닐까.
서영관 논설위원 seo123@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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