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사진에서 옹기 한 짐 지고 가는 옹기장수를 보면 늘 아슬아슬한 느낌이다. 그 옹기장수가 나무그늘 아래 쉬면서 "한 푼 준 것은 두 푼 받고, 일 전 준 것은 이 전 받고 이러다 한 냥이 두 냥 되고 마침내 억만금 부자가 되리라"며 땀을 식힌다. 식은땀으로는 너무 아쉬웠던지 옹기 장수는 "재산도 이쯤인데 대장부 어찌 마누라가 없을쏘냐. 그런 후 집 장만하고 세간살이 들여놓고 첩 하나 거느리는 게 또 뭐 그리 대수랴"라며 큰소리치고 나니 그제사홀가분하다.
○…그런데 은근히 걱정 한 가지가 스친다. 혹 마누라와 첩이 싸우면 어떻게 할까 하는 점이다. "그렇다면 응당 내 이것으로 따끔히 다그치리라"며 옹기장수는 힘센 팔뚝으로 지게 작대기를 뽑았더니 와르르 무너지며 박살 난 것은 옹기뿐이었다. 이를 빗대 옹산(甕算)이라고 한다. 요즘 세태에서야 이런 계산법으로는 도저히 살아남지를 못하겠지만 의외로 이런 계산법이 통용되는 곳이 있다. 선거판이다.
○…후보들은 하나같이 우리를 잘살게 하고 이 사회를 기름지게 하고 누구나 걱정이 없도록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 중 얼마나 많은 또 다른 우리들이 지금까지 걱정더미에서 살아왔으며 계속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길거리서 같은 색깔의 옷을 껴입고 엇비슷한 박자로 춤을 추며 한 표를 호소하는 그 동작들 속에 숨은 옹산은 그러나 넘어져도 결코 옹기처럼 박살은 나지 않을 것이다.
○…온 나라가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에 가해진 테러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분석들을 하느라 분주하다. 범인을 두고 지나치게 계산을 대는 사람이 분명하다며 흥분하는 여론이 형성되기도 하고, 각 정당들은 저마다 이 사건을 지게에 올려놓고 새로운 전략을 짜느라 부심하는 꼴이 흡사 옹산에 다름 아니다.
○…오죽하면 먼로가 "국민들은 분노에 투표하는 것이지 올바른 평가를 내려 투표하는 것은 아니다"고 했을까. 이걸 역설이라고 쳐도 지금 꼬일 대로 꼬인 정국과 사회적 심리를 누구 하나 어떻게 풀어야 할지 걱정하는 사람들은 없다. 그래서 김영랑은 "5월은 두견을 울게 하고 꾀꼬리를 미치게 하는 재앙 달. 더러는 사람으로 하여금 과한 탈선도 하게 하지 않는가"고 이미 절규해 버렸는지도 모른다. 옹산으로는 옹기만 깨질 뿐이다.
김채한 논설위원 namu@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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