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엄마, 빨리 일어나세요"…뇌경색 어머니 돌보는 정희씨

2년을 살았지만 정희(가명·19·여·대구시 서구 비산동)에게 대구는 아직 낯선 도시다. 살가운 이 하나 없던 이곳에서 정희가 의지할 수 있는 이라곤 눈 먼 어머니 조두선(44·가명) 씨 뿐이었다. 하지만 지난 4월 초 어머니가 쓰러지면서 정희가 꿈꾸던 미래도 산산조각 났다.

정희의 고향은 경북 울진군 후포읍 바닷가. 변변치 않은 살림살이에 팍팍한 일상, 어머니는 횟집에서 일을 했고 아버지는 뱃사람이었다. 술이 과한 것이 흠이었지만 정희에겐 든든한 아버지였다.

정희가 중학교에 막 들어갈 무렵, 행복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간경화로 쓰러진 것. 1년 동안 누워 지내야 했던 아버지는 결국 저 세상으로 떠났다. 모아뒀던 돈을 병원비로 다 써버린 것은 물론 빚만 잔뜩 남겨 놓은 채.

슬픔을 추스를 겨를도 없었다. 남은 피붙이라곤 어머니와 정희 둘 뿐. 공부를 계속하라는 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정희는 고교 진학을 포기했다. 당초엔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정희네 형편엔 언감생심.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검정고시 준비를 했다.

"형편이 어려우니 조금 돌아가도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원래 낙천적인 성격이었거든요. 하지만 현실은 제 생각과 많이 달랐습니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쉽게 돈이 모이질 않았어요. 나이가 어린 탓에 돈을 얼마 받지도 못했죠."

이 같은 생활마저 오래가지 않았다. 어머니는 당뇨로 인한 합병증으로 두 눈이 멀어버렸다. 2년 전 일이었다.

큰 병원에 가서 어머니 병을 고치려고 아는 이 하나 없는 대구로 터전을 옮겼다. 매달 20만 원을 주는 조건으로 단칸방을 얻었다. 구석진 방에 어머니를 남겨두고 미용실에 다니기 시작했다. 하루 빨리 자리를 잡으려면 기술이 필요했기 때문.

일은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매일 12시간을 일해도 한달 손에 쥐는 돈은 50만 원이 전부였다. 미용재료비며 차비 등을 제외하고 나면 남는 것이 없었다. 그나마 기초생활수급권자가 돼 매달 40여만 원을 보조받는 것이 위안이 됐다.

"엄마가 저보다 더 힘드셨죠. 저 없인 아무 곳도 다닐 수가 없었어요. 집에서도 넘어지고 부딪히길 거듭했을 정도니까요. 그래도 손으로 더듬어가며 밥은 지으셨습니다. 제가 일하다 밤늦게 집에 들어와도 주무시지 않고 절 기다리시곤 했는데…."

정희는 요즘 병원에서 산다. 지난달 초 어머니가 뇌경색으로 쓰러진 뒤부터다. 의식은 겨우 돌아왔지만 어머니는 혼자 움직일 수도 없고 말도 할 수 없다. 이미 300만 원이 훌쩍 넘은 병원비. 결국 월세방도 빼야 했다. 어머니 침대 옆에서 쪼그리고 잠을 청해야 한다.

한창 꾸미고 싶을 나이. 하지만 정희는 맨얼굴에 운동복 차림새다. 병원 밖을 나설 수가 없어서다. 수시로 어머니 목에 찬 가래를 빼내야 하고 대소변도 받아낼 사람이 정희뿐이기 때문이다.

계속 밀어닥친 불행. 몸을 누일 집도, 병원비를 낼 돈도 없다. 어머니가 곧 자리를 털고 일어나리란 기약도 없다. 그래도 정희는 꿋꿋하게 버틴다. 세상에 하나 뿐인 피붙이, 어머니가 있기 때문이다.

"마냥 울고 있을 순 없잖아요. 제가 포기하면 우리 엄마는 어쩌라고요. 살아계시니 희망을 버리진 않습니다. 참, 우리 엄마 음식 솜씨가 얼마나 좋은지 아세요? 엄마가 해주신 밥이 먹고 싶네요."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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