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를 보면서 토탈 사커가 연상된다고 말한다면, 감히 축구에 한국 정치를 빗대 축구를 '모욕'하지 마라는 빈축을 살 게 분명하다. 그러나 요즘 정치판을 보면서 토탈 사커가 생각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5·31 지방선거로 열린우리당은 지리멸렬해졌다. '한나라당 전원 공격, 열린우리당 전원 수비' 형국이다. 응원도 온통 한나라당 편이다.
그러나 이런 적이 어디 한두 번이었나? 이러다 무슨 바람이 불어서인지 공수가 싹 뒤바뀌어 처지가 정반대로 돌변하곤 하지 않았던가?
따라서 열린우리당이 겪고 있는 지금의 궤멸적 위기상황이 내년 말 대통령 선거 때까지 계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열린우리당은 무슨 몸부림을 쳐서라도 수(手)를 만들어낼 것이다.
왜냐하면 우선 누구나 아는 저 명언처럼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이기 때문이다. 물적 토대를 제약조건으로 하는 일이 아닌 만큼, 사람이 거의 유일한 자원인 만큼 정치는 무한한 상상력이 춤추는 창의력의 무대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아직 1년 6개월이나 남아 있는 이 엄청난 시간적 여유 속에서 열린우리당이 속수무책으로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열린우리당의 몸부림을 예측케 하는 또 다른 이유는 권력의 속성이다. 누구와도, 부모-자식 간에도 공유할 수 없다는 권력을 손에 쥔 지 7년. (대통령 바뀌고 정당 간판 달라져도 몸통은 같다.) 꽃 피고 새 지저귀고 바람 부드러운 꽃동산을 버리고 칼바람 부는 황야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곤란에 빠지지 않으면 지혜는 없다던가! 이번 지방선거 결과로 열린우리당이 맞닥뜨린 곤경을 헤아려 본다면 여기에서 탈출하기 위한 몸부림이 얼마나 필사적일 것인가는 보지 않아도 뻔하다.
열린우리당의 시스템도 한 몫 할 것이다. 대구의 한 국회의원은 이렇게 말한다, 열린우리당은 시스템화한 정당이라고. 열린우리당에게 대선주자의 이름 석 자는 중요하지 않다고. 기실 열린우리당을 만들다시피 했던 정동영 전 당의장이 지방선거 패배로 당을 떠나는 데에 개표 종료 후 한나절이 채 걸리지 않았던 것을 보면 과연 시스템화해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 시스템이 이념이나 이상이나 비전을 위한 것이 아님은 지난 참여정부의 실정(失政)이 증명하는 바다. 열린우리당의 '시스템'은 오로지 권력 재창출을 위해서 작동할 것이다.
게다가 한나라당은 아직도 인물 위주의 대선 전략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특정 후보에게 올인해 실패한 것을 교훈삼은 게 지금의 세 명 후보구도이다. 한 명에서 세 명으로 늘어났으니 큰 발전이겠지만, 열린우리당의 '시스템'적 차원에서 보면 한나라당의 새로운(?) 대선전략이 두렵게 여겨지지는 않을 것 같다.
우리나라의 지역주의 정치구도가 전혀 바뀌지 않았으므로 내년 대선 역시 구조적으로 열린우리당이 유리하다고 어느 당대 논객이 말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지역주의 구도 하에서 내년 대선 열쇠도 수도권과 충청권이 쥐고 있다면, 충청권은 지역 현안사업인 행정중심복합도시 계속 추진을 위해 열린우리당에 표를 더 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이런 것들을 감안하면 지금 한나라당이 지방선거 압승에 자만하지 말자며 조심하는 것은 잘 하는 일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진정 해야 할 일은 자만하지 말자는 소극적인 자세가 아니다. 앞에서 봤듯이 노무현 정부의 실정으로 인한 반사이익에 기댄 승리를 또 바라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온갖 전망과 계책과 정략이 벌써부터 난무하는 대선정국에서 한나라당의 필승책은 무엇일까? 그것은 지극히 단순한 데 있다. 한나라당은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지방권력을 거의 쥐게 됐다. 지방 살리기에 마음껏 나서볼 수 있는 기회다. 한나라당의 진짜 승부 포인트는 지방이라는 것이다. 지방 일을 잘 하면 나라 일도 맡겨질 것이다.
이상훈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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