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蘭)을 가르며
이 명 주
유월의 마지막 날, 난을 가르며
엉킨 뿌리의 하얀 속살을 본다
사랑의 덕목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시리게 갈라져 나가는 모든 것들을 추억한다
한 분(盆)에서 더 이상
더 이상은 자라날 수 없다고 어진 손으로
합당한 논리의 손으로
껴안고 있는 몸짓들을 뜯어낸다
허물어뜨리는 손길에
난의 잎들은
비를 가르며 내리는 비를 가르며
서로의 뿌리를 서로에게 넘겨주고 있다
살아서 사무치는 더 먼 그리움보다
이렇게 몇 번을 더 갈라져 제각기 길을 가는
그 슬픈 동반을 그리고 이별을
실핏줄 터져 가는 슬픔으로
내리는 비를 씻어낸다 씻어내어 비로소
환해지는 햇살 속
또 한 잎이 그리움의 싹을 틔어
먼 먼 내일을 열어
열어 갈 것인가
이별은 아픔이다. 그러나 아픔을 지나면 새로운 만남이 있다. 이렇게 보면 이별의 아픔은 새로운 만남을 위한 성장통인 것이다. 지금 당장은 '한 분(盆)에서 더 이상/ 더 이상은 자라날 수 없다고 어진 손으로/ 합당한 논리의 손으로/ 껴안고 있는 몸짓들을 뜯어' 갈라내어, '이별의 아픔'을 강요하지만 그들의 '이별'은 아픔을 이기고 마침내 '환해지는 햇살 속'에서 '그리움의 싹을 틔어/먼 먼 내일을 열어' 가기 위함이다.
우리가 지금, '제 각기 다른 길을 가'는 것 같지만 그것은 '이별'이 아니라 '내일을 열어'가기 위한 '슬픈 동반'인 것이다.
구석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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